1901년 12월, 프랑스 고고학자 자크 드 모르강(Jacques de Morgan)이 이끄는 발굴팀이 페르시아(현 이란) 수사(Susa)의 한 언덕에서 거대한 검은 돌기둥을 발견했다. 높이 2.25m, 검은 현무암 표면에 빼곡히 새겨진 쐐기문자—해독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약 3,700년 전 바빌론의 함무라비왕이 새긴 282개 조항의 법전이었다.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가장 완전한 고대 법전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 법전은 단순한 보복법이 아니라, 인류 최초의 정밀한 법체계이자 동시에 고대 사회의 모든 단면을 그대로 박제한 거대한 거울이었다.

1. 1901년 수사에서 — 비석의 재발견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비석은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원래 이 비석은 바빌론(현 이라크)의 신전에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이 어떻게 페르시아 수사까지 왔을까. 답은 BC 1,158년경 엘람(Elam) 왕국의 슈트룩-나훈테(Shutruk-Nahhunte) 왕이 바빌론을 정복하면서 전리품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 후 약 3,000년 동안 수사의 흙 속에 묻혀 있다가, 1901년 발견된 것이다. 비석 윗부분에는 함무라비왕이 태양·정의의 신 샤마쉬(Shamash)로부터 직접 법을 받는 장면이 부조되어 있고, 그 아래에 282개 조항이 줄지어 새겨져 있다. 신이 직접 내린 법—이것이 함무라비 법전이 가진 첫 번째 권위였다.
2. 함무라비왕 — 바빌론을 메소포타미아 제국으로
함무라비(Hammurabi, BC 1,792~1,750 재위)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작은 도시 국가였던 바빌론의 6대 왕이었다. 즉위 당시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국가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함무라비는 43년의 재위 기간 동안 정복과 외교를 통해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했다. 그는 라르사·마리·아시리아·에쉬눈나 등 강력한 경쟁자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BC 1,755년경에는 사실상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단일 제국으로 통합한 첫 통치자가 되었다. 영토를 통일하고 나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법전 정비였다. 다양한 문화와 관습을 가진 광역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려면 통일된 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3. 282개 조항 — 형법보다 더 많은 민법
법전은 서문 – 본문 282조 – 후문의 3부 구조로 되어 있다. 서문에서 함무라비는 자신이 “강자가 약자를 해치지 못하도록, 고아와 과부에게 정의를 베풀도록” 신으로부터 법을 받았다고 선언한다. 본문 282개 조항은 재판·재산·상거래·가족·결혼·상속·노예·농업·건축·의료·형법 등 거의 모든 사회 영역을 망라한다. 그 분포를 보면 ① 재산·상거래 조항(약 80조)이 가장 많고, ② 가족·결혼·상속(약 70조), ③ 농업·노예(약 50조), ④ 형법·폭력(약 40조), ⑤ 의료·기술(약 25조) 순이다. 즉 함무라비 법전은 형법보다 민법·상법에 더 비중을 둔 종합 법전이었다. 단순한 처벌의 책이 아니라 사회 운영 매뉴얼이었던 것이다.
4.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Lex Talionis
함무라비 법전이 인류 문화사에 남긴 가장 유명한 표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Lex Talionis, 동해보복법)다. 제196조: “자유민의 눈을 멀게 한 자는, 그의 눈을 멀게 한다.” 제197조: “자유민의 뼈를 부러뜨린 자는, 그의 뼈를 부러뜨린다.” 제200조: “자유민의 이를 부러뜨린 자는, 그의 이를 부러뜨린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제230조다. “건축업자가 부실 시공으로 집주인의 아들을 죽게 했다면, 그 건축업자의 아들을 죽인다.” 죄를 지은 본인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 처벌받는 이 조항은 현대인의 윤리감과 충돌하지만, 당시로서는 ‘같은 가족의 같은 위치를 같은 정도로 손상한다’는 절대적 공정 원리의 표현이었다. 이 보복법은 후에 구약성경·코란·로마법까지 영향을 미친 인류 법사의 원형이었다.

5. 자유민·평민·노예 — 신분에 따라 다른 정의
그러나 함무라비 법전의 ‘공정함‘에는 결정적 한계가 있었다. 같은 죄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에 따라 처벌이 완전히 달랐다. 바빌론 사회는 ① 아윌룸(Awīlum, 자유민·귀족), ② 무슈케눔(Mushkēnum, 평민·반자유민), ③ 와르둠(Wardum, 노예)의 3계급으로 구분되었다. 자유민이 자유민의 눈을 멀게 하면 같은 보복형이 적용되었지만(196조), 자유민이 무슈케눔의 눈을 멀게 한 경우는 단지 은 1마나를 변상하면 끝났다(198조). 자유민이 노예의 눈을 멀게 한 경우는 노예의 시장 가격의 절반만 주인에게 변상하면 끝났다(199조). 같은 ‘눈’이지만 신분에 따라 가치가 달랐다. 이것은 함무라비 법전이 ‘법 앞의 평등’이라는 현대적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6. 의사의 손과 건축업자의 사형 — 전문가 책임법의 원형
법전의 또 하나 흥미로운 특징은 의료·기술 조항이다. 의사가 수술에 성공하면 후한 보수를 받았지만(215조), 실패해 환자가 죽거나 눈을 멀게 하면 의사의 손을 잘랐다(218조). 건축업자가 부실 시공으로 사람을 죽이면 사형, 단순히 집이 무너지면 보수해야 했다(229~233조). 뱃사공이 배를 침몰시키면 손해를 변상하고 새 배를 만들어줘야 했다(236~240조). 이는 현대로 치면 제조물 책임법(Product Liability)·의료 과실법의 원형이다. 4천 년 전에 이미 ‘전문가는 자기 일의 결과에 책임진다’는 원리가 명문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노예의 권리, 결혼·이혼 절차, 채무 노예제 등 사회 모든 구석을 규정한 함무라비 법전은 ‘문서로 본 4천 년 전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7. 인류 최초의 법전은 아니다 — 우르남무와의 비교
한 가지 오해를 풀어야 한다. 함무라비 법전은 인류 최초의 성문 법전이 아니다. 함무라비보다 약 300년 앞선 우르남무 법전(Code of Ur-Nammu, BC 2,100경)이 인류 최초로 알려져 있고, 그 사이에 리피트-이슈타르 법전(BC 1,930경), 에쉬눈나 법전(BC 1,800경)이 있었다. 함무라비 법전이 더 유명한 이유는 ① 가장 완전한 형태(282조)로 보존되어 있고, ② 가장 정교한 분류 체계를 갖췄으며, ③ 검은 비석이라는 시각적 임팩트가 있기 때문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우르남무 법전이 함무라비보다 더 인도적이었다는 점이다. 우르남무는 신체 손상에 보복형 대신 은(銀)으로 배상하도록 했다. 즉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은 인류 법사에서 보복형의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화폐 배상 시대에서 보복형으로의 후퇴로 해석될 수도 있다.
8. “강자가 약자를 해치지 못하도록”
함무라비 법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눈에는 눈’ 이상이다. 그것은 4천 년 전 한 통치자가 광역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시도한 첫 거대 입법 프로젝트였고, 그것은 후대 유대 율법·로마법·이슬람법을 거쳐 오늘날 모든 법체계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함무라비 법전은 우리에게 ‘법치(法治)’와 ‘평등(平等)’이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준다. 법은 정해져 있었지만, 사람마다 그 법이 다르게 적용되었다. 자유민·평민·노예는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류가 ‘법 앞의 평등’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까지 3,500년이 더 필요했다. 그럼에도 함무라비 법전은 “강자가 약자를 해치지 못하도록”이라는 한 줄의 서문으로, 인류가 처음 정의(正義)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했음을 증명한다. 4천 년이 지났지만 그 한 줄은 여전히 모든 법이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