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1년 5월 30일, 프랑스 루앙의 광장에 화염이 솟았다. 화형대 위의 소녀는 아직 19세였다. 군중은 침묵했고, 어떤 영국 병사는 “우리는 한 성녀를 태웠다“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이름은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 농부의 딸로 태어나 17세에 갑옷을 입고 백년전쟁의 흐름을 뒤집었으며, 18세에 적에게 사로잡혀 19세에 마녀로 화형당했다. 그리고 489년이 지난 1920년, 그녀는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한 인생이 이단에서 성인으로 가는 데 5세기가 걸렸다.

1. 동레미의 농부 딸, 천사의 목소리를 듣다
잔 다르크는 1412년경 프랑스 동북부 동레미(Domrémy)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농부 자크 다르크의 딸이었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고, 평범한 농촌 소녀로 양을 치고 실을 짰다. 그러나 그녀가 12세 때부터 비범한 일이 일어났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목소리(voices)’—성 미카엘 대천사, 성 카타리나, 성 마르가리타—가 자신에게 사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프랑스를 구하고, 왕세자를 랭스로 데려가 대관식을 올리게 하라.” 당시 프랑스는 멸망 직전이었다. 백년전쟁 90년째, 영국과 부르고뉴 동맹이 파리와 노르망디를 점령했고, 왕세자 샤를은 정통성조차 의심받는 처지였다. 그런 시대에 한 시골 소녀가 “내가 프랑스를 구한다”고 나선 것이다.
2. 시농의 알현 — 17세 소녀가 군대를 받다
1429년 봄, 17세의 잔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장(男裝)을 한 채 시농(Chinon) 성으로 가서 왕세자 샤를을 알현했다. 의심하는 샤를은 그녀를 시험하려고 자신을 신하 무리에 숨겼다. 그러나 잔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고 무릎을 꿇었다. 신학자들의 심문, 처녀성 검사까지 통과한 뒤 그녀는 마침내 군대를 받았다. 그녀의 첫 임무는 오를레앙 해방이었다. 7개월간 영국군이 포위한 프랑스의 마지막 거점이었다. 1429년 4월 29일 잔이 도착했고, 단 9일 만인 5월 8일 오를레앙은 해방되었다. 가슴에 화살을 맞고도 다시 전선으로 돌아간 17세 소녀의 모습은 사기를 폭발시켰고, 영국군은 충격 속에 후퇴했다.

3. 9일의 기적 — 오를레앙 해방
오를레앙 해방 이후 6주 만에 프랑스군은 루아르 강 유역 전체를 탈환했다. 그리고 1429년 7월 17일, 잔의 호위를 받으며 왕세자 샤를은 랭스 대성당에서 정식으로 즉위해 샤를 7세가 되었다. 프랑스 왕은 전통적으로 랭스에서 대관식을 치러야 정통성이 인정되었는데, 그 도시가 영국 점령지 한가운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잔이 길을 뚫은 것이다. 두 가지 임무—오를레앙 해방, 랭스 대관식—를 모두 완수한 셈이다. 17세 소녀는 이제 프랑스 전체의 영웅이었다.
4. 랭스 대관식 — 샤를 7세의 탄생
그러나 영광은 짧았다. 잔이 파리 탈환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1430년 5월 콩피에뉴(Compiègne) 전투에서 부르고뉴 동맹군에게 사로잡혔다. 부르고뉴는 그녀를 영국에 1만 리브르에 팔아넘겼다. 영국은 그녀를 그냥 처형하는 대신 종교재판에 회부하기로 했다. 그녀가 ‘신의 사명’을 받았다는 주장 자체를 거짓으로 만들어, 샤를 7세의 정통성까지 무너뜨리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녀를 구하려 하지 않은 사람—바로 잔이 왕위에 올린 샤를 7세였다. 그는 몸값 협상도, 군사적 구출도 시도하지 않았다.
5. 콩피에뉴와 종교재판 — 19세 소녀에게 70명의 신학자
1431년 1월부터 5월까지, 70여 명의 신학자와 법관이 19세 소녀를 심문했다. 글을 모르는 잔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영리하게 답했다. 한 신학자가 “당신은 신의 은총 속에 있다고 믿습니까?” 하고 함정을 놓자(예라고 답하면 신성모독, 아니라고 답하면 자기부정), 그녀는 답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신께서 저를 그렇게 만들어 주시기를. 만약 그렇다면, 신께서 저를 그렇게 지켜주시기를.” 결국 재판부는 그녀에게 이단·마녀·남장(男裝)의 죄를 씌웠다. 5월 30일 아침 루앙 광장에서 그녀는 산 채로 화형당했다. 마지막에 그녀는 십자가를 보여달라 부탁했고, “예수님!”을 외치며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6. 화형, 그리고 25년 후의 명예회복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5년 후인 1456년, 잔의 어머니 이자벨 로메(Isabelle Romée)의 청원과 새 교황 칼리스토 3세의 명령에 따라 재심(再審)이 열렸다. 1431년 재판의 모든 절차가 무효로 선언되었고, 잔은 공식적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무려 115명의 증인이 그녀를 변호했다. 그리고 또 464년이 지난 1920년 5월 16일,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잔 다르크를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諡聖)했다. 한 시대가 마녀로 태운 소녀를, 또 한 시대가 성인으로 모신 것이다. 그녀는 오늘날 프랑스의 수호성인이며, 잔의 깃발은 프랑스 군대의 상징이다.

7. 489년 후 — 성인 잔 다르크
잔 다르크는 단순한 종교적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근대 민족주의의 원형으로 자리잡았다. 19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특히 보불전쟁(1870)에서 패배한 뒤 프랑스인들은 그녀를 ‘프랑스의 영혼’으로 재발견했다. 좌파에게 그녀는 농민 출신의 평민 영웅이었고, 우파에게는 가톨릭 신앙과 조국애의 화신이었다. 양 진영 모두가 그녀를 자기 깃발로 사용했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는 그녀를 마녀로 그렸고(헨리 6세), 19세기 프랑스의 미슐레는 그녀를 자유의 화신으로 그렸으며, 마크 트웨인은 자신이 가장 사랑한 인물로 꼽았다. 그녀의 19년은 짧았지만, 그녀가 던진 질문—’한 인간이 어디까지 자기 사명을 믿을 수 있는가‘—은 영원하다.
8. 시간이 결정한 영웅
잔 다르크의 생애는 한 줄로 요약하기 어렵다. 그녀는 환청을 듣는 정신질환자였을까, 진짜 신의 사명을 받은 성녀였을까, 아니면 시대의 절망이 만들어낸 정치적 우연이었을까. 답은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글도 모르는 17세 농민 소녀가 갑옷을 입고 한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신화가 아니라 동시대의 군사 기록·재판 기록·증인 진술로 입증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녀가 화형당한 1431년 5월 30일은 패배의 날처럼 보였지만, 그날 이후 영국군은 결국 프랑스에서 밀려났고(1453년 백년전쟁 종료), 그녀의 이름은 6세기가 지나도 식지 않았다. 진정한 영웅은 시간이 결정한다는 것을, 잔 다르크의 일생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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