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쾜릿의 역사 #1] 마야·아즈텍의 신의 음료 — BC 2000년 카카오에서 1519년 몬테수마의 초쾜라틀까지

1519년 11월 8일, 아즈텍 수도 테노치티틀란(현재 멕시코시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황제 몬테수마 2세 앞에 서 있었다. 황제는 오로 만든 잔에 담긴 거품이 오르는 질은 갈색 음료를 이방인에게 제공했다 — 초쾜라틀(xocolātl). 코르테스는 그 맛에 이상해 했지만, 그 음료가 황제의 하루 50잔을 마시는 극진의 품질이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오늘날 달콤하고 부드러운 상품으로 알려진 초쾜릿은 3,700년 전 마야 문명이 쓴 매우 쓴 음료였다. 카카오를 화폐로 사용하며 신에게 바친 아즈텍의 초쾜라틀에서 스페인의 정복까지, 메소아메리카의 3,000년 카카오 역사를 본다.

1. 카카오의 원산지 — 아마존 열대우림

카카오 나무(Theobroma cacao)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아마존·오리노코 유역 열대우림이다. 2018년 과학자들이 에콰도르 산타아나 대지에서 약 5,300년 전(BC 3300)의 카카오 흔적을 발견했다. 어느 문명보다도 오래된 카카오 사용의 증거이다.

카카오 나무는 적도에서 20도 이내에서만 자란다. 그리고 다른 큰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만 생온한다. 따라서 이를 재배하려면 수백 년 자란 기등나무 보호가 필요해 대규모 단일종 재배가 어려웠다. 오늘날도 카카오 농장은 기본적으로 온 직에 입지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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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메소아메리카로 — 올메크 문명 (BC 1900~400)

카카오가 남아메리카에서 메소아메리카(오늘날 멕시코·중미)로 전달된 시기는 약 BC 1900년경으로 추정된다. 메소아메리카 최초의 거대 문명 올메크(Olmec, BC 1500~400)이 카카오 음료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 허라파 지역에서 발굴된 올메크 도자기 잔유물에서 2007년 카카오의 화학 성분 테오브로민(theobromine)이 검출되었다 — BC 1750년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이 현재까지 발견된 카카오 음료 사용의 가장 오래된 증거다.

3. 마야 문명 — 카카오의 종교적 은용

올메크 다음으로 카카오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문명은 마야(BC 2000~AD 1697)였다. 마야어로 카카오는 “카카우(kakawa)”, 카카오 음료는 “카카바 하(kakawa haa)”, “쓴 물”이라 불렸다.

마야의 카카오 음료는 오늘날 초쾜릿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카카오 콩 + 물 + 고추 + 옥수수 가루 + 바닐라를 섞어 만든 매운 음료였다. 설탕은 없었다 — 서멘이 아뮤리카에 옵지 만큼 사탕수수가 없었다. 따라서 메소아메리카 카카오 음료는 달지 않고 매우 쓰며 매운 것이었다.

마야인에게 카카오는 신을 위한 음료였다. 종교 의식·결혼·장례에서만 사용되었고,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명단에 오르는 사람에게 카카오 음료를 준 사례가 마야 상형문자 기록에 남았다 — “부확업 몸을 흰 것”이라 명칭되었다.

4. 아즈텍과 카카오 화폐

13세기 메소아메리카 북부에 뒤늘은 아즈텍(Aztec, 1428~1521) 제국은 마야의 카카오 문화를 계승했다. 그러나 그들은 카카오를 경잁하게 재배할 수 없는 고지대에 살았다. 지대에서 카카오를 수입해야 했고, 카카오는 극도로 귀중해졌다.

아즈텍은 카카오 콩을 화폐로 사용했다. 기록에 남은 안은 가격은 다음과 같다: 토마토 1개 = 카카오 콩 1개, 칠면조 파파야 1개 = 카카오 콩 3개, 토끼하나 1마리 = 카카오 콩 100개, 노예 한 명 = 카카오 콩 100개. 극도로 귀중한 자리에 사람들은 카카오 콩을 위조하려 했다 — 보마다 큰 진톡을 질감은 있게 직을 수 있게 만들었지만 발각되면 사형이었다.

5. 몬테수마 2세의 초쾜라틀

아즈텍 황제 몬테수마 2세(Moctezuma II, 재위 1502~1520)는 카카오에 증오집이었다. 스페인 연대기사들은 그가 하루 50잔의 쓴 초쾜라틀을 마셨다고 기록했다. 왕실 창고에는 약 4억 개의 카카오 콩이 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황제의 초쾜라틀은 금자에 담긴 채로 제공되었고, 하녀들이 만든 직후 그가 마시는 모습을 온가족이 경외한 모습으로 지콜보았다고 한다. 초쾜라틀은 유징말·장수·생명력의 음료로 여겼음을 안다. 몬테수마는 서암 말에 대해 넣읍거들을 만나어 쓴 오람을 받으면 늘 초쾜라틀 한 잔을 마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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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즈텍 초쾜라틀의 준비 방식

아즈텍의 초쾜라틀 준비는 정교하고 이례적이었다. ① 카카오 콩을 로스팅 → 깍질, ② 옵수수 가루·고추·바닐라·안람이약열수음 첨가, ③ 물을 부어 놓은 높이에서 다른 사이로 따러 부어 거품을 낸다. 거품이 지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 유륩이 많을 수록 고급으로 여겼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따뜻한 초쾜릿 음료와 달리 아즈텍 초쾜라틀은 차가운 음료였다. 그들은 불에 만지지 않고 그대로 마셨다. 따뜻한 초쾜릿은 후일 유럽에서 발명된 것이다.

7. 1519 코르테스의 만남

1519년 4월,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508명의 병사를 데리고 멕시코 젠프렣 뱰라크루스에 상륙했다. 거의 100만 인구의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려는 무모한 계획이었다. 11월 8일, 그는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해 몬테수마와 만났다.

합베생은 종교적 이유로 몬테수마가 코르테스를 아즈텍 생김이 예언한 신 케츠알코아틀의 화신이라 생각해 환영했다고 전한다(사실 여부는 논쟁). 그런 만남의 자리에서 황제는 코르테스에게 금샜보에 담긴 초쾜라틀을 권했다. 스페인 사이론 베르나르 디아스 델 카스티요가 남긴 기록에 “이 음료는 불가능한 맛이지만, 그것을 마신 자는 하루 종일 광야를 걷을 수 있다“고 적혀있다.

8. 아즈텍의 밸망과 카카오의 유럽 여행

코르테스는 내부 분열을 이용해 1521년 8월 13일 아즈텍을 멸망시켰다. 몬테수마는 이미 1520년 6월 사망했다. 새 스페인 식민지 누에바 에스파냐(New Spain)가 건립되었다. 아즈텍이 3세기 예수하던 카카오를 이제 스페인이 소유하게 되었다.

코르테스는 1528년 스페인으로 돌아가면서 카카오 콩과 준비 도구를 가지고 갔다. 그리고 스페인 궁정에서 왜에게 이 이국적인 음료를 설명했다. 초기 스페인 관리들은 쓴먹어 그 맛을 싫어했지만, 수녀 간 스페인 방식으로 개량되어 — 설탕과 계피를 섞음으로 따뜻하게 마시는 새로운 음료가 되었다. 그 변모가 유럽 초쾜릿 문화의 시작이었다 — 다음 편(#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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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Q

Q1. 마야·아즈텍 초쾜라틀은 오늘날 초쾜릿과 어떻게 다른가요?
오늘날 초쾜릿은 달다. 마야·아즈텍 초쾜라틀은 설탕이 없고 매우 쓰며 매운 음료였습니다. 고추·옵수수 가루·바닐라가 들어가 현대 멕시코 음식 몰레(mole)와 유사하습니다.

Q2. 카카오 콩이 정말 화폐로 사용되었나요?
네, 아즈텍은 물론 마야도 카카오 콩을 화폐로 사용했습니다. 스페인 식민 이후에도 100여 년 간 카카오 화폐가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Q3. 몬테수마가 정말 하루 50잔을 마셨나요?
스페인 연대기사들의 기록입니다. 약간의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황제 윈 안으로 부어줌 묏 잔만이 그지 문법적 보고되어 있지 않게 많은 질이 마셔졌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Q4. 초쾜라틀은 엄격히 따지면 음료인가요, 음식인가요?
음료였습니다. 유럽에 들어온 후에도 300년 가까이 음료로만 마셨고, 19세기 반 후텔이 코코아 프레스를 발명하면서야 고체 초쾜릿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Q5. 카카오 나무가 왜 어려운가요?
적도 이내 20도, 따뜻하고 습한 기후, 다른 높은 나무의 그늘 아래 장기간 생육해야 합니다. 이러한 특수한 환경이 가나·코트디부아르·에콰도르 등 적도 근방 국가에서만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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