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41년, 당나라 말 대종이 문성공주(文成公主)를 티베트 왕 송천간포(松贊干布)에게 시집보냈다. 그녀가 가져간 결혼 지참품 중에 당나라 떡차가 있었다. 이것이 티베트에 차가 전해진 공식 기록이고, 그 후 1,400년 동안 티베트인은 매일 약 40잔의 수유차(酶油茶)를 마셔왔다. 해발 4,500m 산소 부족의 고원에서 칼로리·비타민·염분을 얻는 생존의 음료였다. 말차가 예술로 발전한 동아시아와는 정반대로, 유목민의 세계에서 차는 생존과 연결되었다. 그 유라시아 대륙의 차 길을 본다.
1. 641년 문성공주 — 티베트에 당나라 차를 전하다
티베트의 차 역사는 결혼으로 시작된다. 641년 당 태종 이세민이 자신의 조카 문성공주를 티베트 왕 송천간포와의 정략혼을 위해 라사(라사에 도착하기까지 약 2년)에 보냈다. 그녀의 결혼 행렬 중에 당 궁정에서 마시던 떡차 수십 상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티베트인은 금세 차의 가치를 금방 알았다. 티베트 고원(평균 해발 4,000–4,500m)은 야채 재배가 거의 불가능해 이들의 식단은 고기·유제품 중심이었다. 비타민·미네랄·서유질이 거의 없는 식단이어서 유목민이 살아남기에 문제였다. 차는 그 결필을 메꾸는 기적의 음료가 되었다.
2. 수유차(酶油茶) — 야크버터 + 소금 + 차
티베트인이 만든 독특한 차 방식이 수유차(Butter Tea, po cha)다. 준비 방식은 다음과 같다. ① 압축 떡차를 부수어 끓이기, ② 낙타에서 앞읃까지 오랫동안 끓여 진한 차 원액만 만들기, ③ 야크버터 큰 덩어리와 소금을 넣어 전용 통통(동모, dongmo)에서 마치로 계속 젬으록, ④ 따뜻한 상태로 대접.
맛은 처음 마시는 외국인에게 충격적이다 — 진한 기름기와 짬기, 소금기를 동시에 느낀다. 온도는 따뜻하지만 맛은 수프에 가깝다. 그러나 4,500m 높이의 야외에서 하루종일 야크 목을 몰고 다니는 목동에게는 칼로리 + 상승기질 + 염분 + 물 보충을 동시에 제공하는 완벽한 음료였다. 하루 40잔은 어려워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밥 + 국 + 음료”를 모두 거의 겸한 생존식이었다.
3. 차마고도의 종착지 — 라사 바쿠르(八康)
#2에서 본 차마고도의 좀착지가 바로 티베트에지 라사였다. 윈난·쓰촨의 차 떡이 말 등에 실려 히말라야 남록을 넘어 라사까지 약 5,000km 거리를 묜린다. 버텀갍이 지나는 경로 중 특히 다상시 이남 지역 바쿠르(八康)는 차마고도의 상징 지점으로 있다.
티베트의 차 수요가 너무 대단해 쓰촨으로부터 1년에 약 2만 톤의 차가 티베트로 수입되었다(19세기 기준). 대순에는 500마리의 말이 함께 이동했다. 차를 씨서 하나의 문명이 남았고, 그 문명의 생존은 차에 달려있었다.
4. 몽골 유목민 — 차와 소금의 유목민 음료
몽골의 차 문화도 티베트와 비슷한 맥락에서 생겨났다. 대초원의 유목민은 야채 부족으로 인한 비타민·서유질 결필을 메꾸기 위해 차가 필요했다. 몽골 수테이 차(suutei tsai)는 녹차·밑크·소금·버터를 넣고 끓이는 짬공 음료다. 몺공에 복음한 식사 대용품으로 밥 돈 수 있다.
칸 제국(1206~1368) 시기 몽골 충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차 무역록이 확대되었다. 틹히 칸 제국이 중앙아시아 무역록을 이질하게 보장하면서 중국에서 페르시아로 향한 차 길이 열렸고, 후일 러시아 사모바르 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5. 신장 위구르 차 — 실크로드의 차 도시
중국 서부 신장(新疆) 지역의 위구르족은 또 다른 차 문화를 가졌다. 유교도 무슬림이지만 이슬람 금주물인 숨을 대치하기 위해 차를 많이 마셔다. 이들의 차는 보통 흥차(黑茶, 후발효)에 장미꽃·계피·생강·소금을 넣은 향이 강한 차다.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들(카슈가르·혀손·하미) 모두 차 거래의 중심지였다. 중국 차가 서역을 거치며 페르시아·터키·아랍 세계로 전달된 지점이다. 다음 편(#7)에서 다룰 이슬람 세계 차 문화의 준비 단계였다.
6. 유목민이 마신 차의 특징 — 흥차(黑茶)이 왜 적합했나
티베트·몽골·지역 유목민이 마신 차는 거의 모두 흥차(사차, 푸얼차 계열)이었다. 어째서 녹차·홍차가 아니었을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① 장기 보존성 — 흥차는 미생물 후발효로 수십 년 보관 가능. 수년간의 장거리 수송에 적합. ② 압축성 — 떡 형태로 단단하게 만들어 말 등에 실기 쉽음. ③ 기름기와 함께 마실 때 맛이 좋음 — 녹차의 상대적 담백함은 기름진 수유차에 어울리지 않았을 것.
7. 오늘날 푸얼차 붐 — 유목민 차의 현대적 재발견
21세기 들어 중국 윈난성 푸얼(普洱)차가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이는 티베트·몽골 유목민이 1,000년간 마셔온 흥차의 하나이다. 미생물 후발효로 톡토한 맛과 건강 효능(지방 분해·장 건강)이 주목받으면서 20년 이상 숙성한 푸얼차가 금 가격으로 거래되는 “푸얼생 투자붐”이 일어난 적이 있다. 한 상자에 100만달러 이상으로 팔린 푸얼차도 있다.
8. 유목민이 차에 단긴 메시지
일본 다도가 “잡음을 없애는 엄격함”이었다면, 티베트·몽골의 차는 “극단적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효율성”이었다. 같은 찻잎이 유럽은 안락한 별장, 일본은 선종 명상, 티베트에서는 생존의 음료로 변모했다. 한 식물에서 이토록 종다른 문화가 나온 사례는 인류 음료사에 매우 드물다.
티베트 라사의 대소사리사(달라이라마의 거처였던 궁)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순례자들에게 매일 수유차를 대접한다. 1,400년 전 문성공주가 가져간 당나라 떡차의 후예가 여전히 킰은 예발한 따뜻함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차의 역사 #2] 차마고도와 한·일 도래 | [차의 역사 #4] 아편전쟁과 식민지 차
❓ FAQ
Q1. 수유차는 정말 맛있나요?
외국인에게는 보통 충격적입니다 — 수프 같은 맛. 그러나 티베트인에게는 칼로리·염분·수분을 종합 제공하는 완벽한 생존음료입니다.
Q2. 티베트에서는 차 자체를 재배하나요?
아니요, 티베트는 너무 높아 차나무가 자라지 않습니다. 쓰촨·윈난에서 수입합니다.
Q3. 몽골 촏기쉬 통은 왜 쓰나요?
녹차+밑크+소금+버터를 계속 젬으려는 짬공 음료를 만들기 위해. 밥과 음료를 거의 걸 거의 거이누는 모든 몽골 가정에 필수품입니다.
Q4. 푸얼차는 티베트에서 온 것인가요?
아니요, 윈난성이 원산지입니다. 그러나 티베트 유목민이 송·명·청 기간 내내 푸얼차를 병차 형태로 수입해 마셔왕습니다.
Q5. 티베트 수유차를 서울에서 맛볼 수 있나요?
서울 이태원 일부 티베트 음식점에서 제공합니다. 야크버터 대신 일반 버터를 쓰므로 정통과 약간 다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