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역사 #3] 영국 차 문화와 보스턴 차 사건 — 1662 캐서린 왕비에서 1773 보스턴, 그리고 애프터눈 티까지

1773년 12월 16일 밤, 보스턴 항구. 모호크족 분장을 한 식민지 주민 130명이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 3척에 올라가 342상자의 차를 바다에 던졌다. 이 단 하루의 사건이 3년 뒤 미국 독립선언을 촉발했고, 8년간의 독립전쟁을 거쳐 신생 미국을 만들었다. 차 한 잔이 제국을 나눠 새 국가를 탄생시킨 사례다. 그 100년 전 캐서린 왕비가 영국 궁정에 차를 들이민 시각부터 빅토리아 애프터눈 티의 탄생까지, 영국을 “뚝 차의 나라”로 만든 130년을 본다.

1. 1657 런던 첫 찻집 — 영국이 차를 처음 만난 날

영국 기록상 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657년 런던 거래소 근처 토마스 가웨이(Thomas Garway)의 커피하우스 광고에서였다. 그는 차를 “만병통치 약”으로 광고했다 — 두통·담·소화불량 모두 고친다고 했다. 한 파운드에 6·60파운드(등령 출시 대학 등록금 해당)의 극상점 가격. 일반 서민은 상상도 못 하는 사치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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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캐서린 왕비 — 1662 왕실 차의 시작

영국 차 문화의 결정적 전환점은 1662년 의로 찤1스 2세의 결혼이었다. 그의 신부는 포르투갈 공주 캐서린 오브 브라간자(Catherine of Braganza)였다. 그녀는 결혼 지참품으로 몇 상자의 중국·포르투갈산 차를 가져왔고, 왕실에서 차를 마시는 풍습을 도입했다. 완전히 사치스러운 왕실 의례였다.

왕비의 취향을 잇따 귀족이 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곳 차는 상류층의 상징이 되었다. 17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차 수입량이 급증해, 1700년에는 영국 동인도회사가 연간 9섬 파운드 이상의 차를 수입했다. 차는 이제 귀족만이 아닌 일부 중산층까지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

3. 동인도회사의 차 독점 — 1700~1773

영국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는 중국 광동 차 무역의 독점을 확보했다. 18세기 중반 차는 영국 수입의 최대 품목이 되었고, 영국 정부는 차에 119%의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 주요 세수원으로 삼았다. 그 결과 차 뉛 보다 세금이 더 비싼 국이 되었고, 대규모 밀수와 속임수가 폅발적으로 늘었다.

4. 보스턴 차 사건 — 1773년 12월 16일

1773년 5월, 영국 의회가 “차법(Tea Act)”을 통과했다. 재정난에 빠진 동인도회사를 돕기 위해 회사에게 식민지(북아메리카) 차 독점 권한을 주었다. 식민지의 자장 상인들이 독점으로 가격 결정권을 잃고 속임수 수입 차도 판매 불가능해졌다. 의회에 대표계 없는 식민지의 분노가 폭발했다 —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12월 16일 밤, 샐웰엔 애담스(Samuel Adams)의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 130여 명이 모호크 분장을 하고 보스턴 항구의 동인도회사 선박 3척에 올랐다. 342상자, 약 92,000파운드(약 46톤)의 차를 바다에 던졌다. 차의 가치는 그 시기 약 1만파운드(오늘날 약 175만달러).

5. 미국 독립혁명으로

영국 의회는 게광하여 “참고불가 법(Intolerable Acts)”으로 보스턴 항구 폐쇄, 매사주세츠 자치 법 해제 등을 단행했다. 식민지 13주가 일제히 반발하며 1774년 제1차 대륙회의가 소집되었고, 1775년 렌싱턴 전투, 1776년 독립 선언, 1783년 독립 완성으로 이어졌다. 차 342상자를 바다에 던진 것이 13주를 하나로 묶은 시작점이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인은 차를 거부하고 커피로 전환했다 — 오늘날 미국이 커피의 나라가 된 문화적 뿌리다. 차는 “영국의 것”으로 인식되었고, 미국인의 정체성 표시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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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애프터눈 티의 발명 — 1840 애나 공작 부인

영국 차 문화의 상징인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는 의외로 역사가 짧다. 1840원경 7대 베드포드 공작 부인 애나 러셀(Anna Russell)이 시작한 습관이다. 당시 영국 상류층은 하루 두 끼를 먹었다 — 아침·8시 조식, 저녁·8시 만찬. 어떤 날 자치일 마잘린(15:00~17:00 사이)에 공작 부인이 시장했다 — “이 시간이 제일 지치해”. 그녀는 하녀에게 차와 작은 샌드위치·스콘·케이크를 가져오라 명령했다.

공작 부인이 친구들을 초대하면서 이 습관이 상류층 전체로 퍼졌고, 곧 중산층을 거쳐 전 영국의 일상이 되었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1837~1901)이 애프터눈 티를 좋아해 왕실 의례의 하나로 만든 것이 결정적이었다.

7. 영국 티 속에 담긴 계급

영국에는 세 가지 다른 티가 있으며, 계급의 지도가 된다. ①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 상류층 접식, 15~17시, 작은 샌드위치·스콘·케이크. ② 하이 티(High Tea) — 하류층·노동자의 저녁 식사, 17~19시, 고기·이른 채소 등 풍성한 식사. ③ 크림 티(Cream Tea) — 주로 데본 지방 스콘 + 클로티드 크림 + 잼, 관광객용 간편 티. 한국 호텔에서 “애프터눈 티 세트”라고 파는 것은 완전히 액존 계급 풍습이다.

8. 영국 티와 한국 국민점 녕녕이 관계

영국의 이 사랑이 19세기 강력한 대외 정책을 난았다. 중국에서 차를 사오는 은이 계속 빠져나가자, 영국은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팔아 무역 귀형을 맞추려 했다. 그것이 아편전쟁(1839~1842)으로 이어졌고, 중국이 홍콩을 자림 주명되며 동아시아 질서가 붕괴되며 결국 한반도 운명에도 영향을 주었다. 차 한 잔이 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바꿔다. 그 구체적 연결은 다음 편(#4)에서 자세히 다룬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차의 역사 #1] 차의 기원 | [차의 역사 #2] 차마고도와 한·일 도래

❓ FAQ

Q1. 보스턴 차 사건으로 얼마나 많은 차가 바다에 버려졌나요?
342상자, 약 92,000파운드(46톤)의 차. 당시 가치는 약 1만파운드(현재 환산 약 175만달러).

Q2. 영국의 “차법”이 세금을 올린 법이였나요?
아니요, 오히려 세금을 낮춘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인도회사의 독점을 강화하고 식민지 상인들의 속임수·권한을 악화시켰기 으로 분노했습니다.

Q3. 캐서린 왕비가 가져온 지참품 중 특별한 게 있나요?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분베이를 적어 영국이 이주하게 되었고, 그것이 영국 설탕·면화·차 삼각 무역의 안정어었습니다.

Q4. 애프터눈 티와 하이 티는 어떤 차이?
애프터눈 티는 상류층의 낮은 접시(15~17시), 하이 티는 하류층·노동자의 저녁 식사(17~19시). 이름이 비슷해도 계급이 다릅니다.

Q5. 옥스퍼드·케임브리지 티를 워낽 차라 부르는 이유는?
영국이 워낽 차(越南茶)이 아니라 인도·스리랑카 아삼종 홍차를 주로 마셔서입니다. 이는 아편전쟁 이후 영국이 자신의 식민지에서 차를 재배하던 역사와 연결됩니다 —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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