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2] 바르셀로나 — 가우디의 도시, 카탈루냐의 천 년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두 번째 도시이지만, 카탈루냐(Catalunya)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사실상 자기들의 수도였습니다. 마드리드가 카스티야 왕가의 인공 수도라면, 바르셀로나는 988년 바르셀로나 백작국 독립 이래 약 1,000년 동안 자기 정체성을 지켜온 오래된 자치 도시입니다. 카탈루냐어는 스페인어와 다른 언어이고, 카탈루냐 깃발(Senyera, 노란 바탕에 빨간 네 줄)은 스페인 국기와 완전히 다른 디자인을 가집니다.

그리고 19세기 말~20세기 초, 이 도시에서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1926)가 자연을 그대로 건물로 만든 일곱 작품을 남겼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구엘 공원·카사 바트요·카사 밀라 — 가우디는 한 도시의 풍경을 영원히 바꾼 단 한 명의 건축가입니다. 카탈루냐 모데르니스모(Modernisme)는 그 자체로 바르셀로나의 정체성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조와 18개 첨탑

1. 사그라다 파밀리아 — 144년의 미완성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Basílica de la Sagrada Família)은 1882년 3월 19일 착공되었습니다. 처음 설계자는 프란시스코 데 비야르였지만 1883년 의견 충돌로 사임하고, 31세의 무명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책임자가 됩니다. 그는 1883년부터 1926년 6월 10일 사망할 때까지 43년 동안 이 단 하나의 프로젝트에 매달렸고, 마지막 10여 년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안에 작은 방을 만들어 거기서 잠을 자며 작업했습니다.

가우디 사망 당시 완공률은 약 15~25%(추정). 그러나 그는 매우 정교한 석고 모형과 도면을 남겼고, 후대 건축가들이 그 설계를 이어받아 100년 동안 공사를 계속했습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중 무정부주의자들이 작업장을 방화해 원본 모형 대부분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후대 건축가들의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수난 파사드(Façana de la Passió, 1980년대 조각가 주제프 마리아 수비라치)의 거친 입체 양식이 탄생 파사드(가우디 직접)와 강한 대비를 이룹니다.

완공 예정은 가우디 사망 100주년인 2026년이었으나, 코로나19 등으로 일부 늦춰져 일부 첨탑과 영광 파사드는 2030년대까지 갈 수 있습니다. 완공 시 예수 그리스도 첨탑(172.5m)이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되며, 가우디는 일부러 인근 산 몬주익(173m)보다 낮게 설계해 “사람의 작품이 신의 작품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면 거대한 기둥이 나무처럼 위로 뻗으며 가지를 펼치고, 천장은 햇빛이 들어오는 숲의 캐노피처럼 보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동쪽(아침·차가운 색)과 서쪽(저녁·따뜻한 색)으로 나뉘어 시간에 따라 내부 색감이 달라집니다. 2010년 11월 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성당을 봉헌해 정식 미사가 가능해졌고, 같은 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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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우디의 다른 걸작들 — 구엘 공원·카사 바트요·카사 밀라

구엘 공원(Park Güell, 1900~1914)은 가우디의 후원자 에우세비 구엘 백작이 영국식 전원 주택가로 개발하려 한 프로젝트였지만, 당시 너무 외진 곳이라 분양이 실패했습니다. 1923년 시 정부가 인수해 공원이 되었습니다. 모자이크 도마뱀 분수, 곡선의 긴 벤치,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100개 도리아 기둥의 시장 자리 — 가우디가 자연 곡선을 건축으로 옮긴 대표 예입니다.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1904~1906)는 그라시아 거리(Passeig de Gràcia)에 있는 다세대 주택입니다. 외관이 마치 용의 비늘 같은 타일로 덮여 있고, 발코니는 해골 모양, 기둥은 뼈를 연상시킵니다. 가우디 본인이 “조르디 성인이 용을 죽이는 카탈루냐 전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옥상의 굴뚝들은 동화 속 캐릭터처럼 생겼습니다.

카사 밀라(Casa Milà, 1906~1910), 별명 “라 페드레라(La Pedrera, 채석장)”는 그라시아 거리에서 두 블록 떨어져 있습니다. 직선이 단 한 줄도 없는 파동치는 석조 외관, 옥상에 늘어선 갑옷을 입은 전사 같은 굴뚝들. 가우디는 “직선은 사람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고 했습니다.

가우디는 1926년 6월 7일 저녁 미사를 보러 가던 중 그란 비아에서 전차에 치였습니다. 평소 검소한 옷차림과 헝클어진 머리 때문에 행인들이 거지로 오인해 한참 동안 응급 처치를 받지 못했고, 다음날 신원이 확인되었지만 6월 10일 사망했습니다. 향년 73세. 그의 장례식에는 바르셀로나 시민 절반이 참석했고, 유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실에 안장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현재 그의 시복(諡福) 절차를 진행 중이며, “신의 건축가”로 성인 칭호를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카탈루냐의 천 년 — 988년의 독립부터 2017년 투표까지

카탈루냐(Catalunya)는 단순한 스페인의 한 지방이 아닙니다. 988년 바르셀로나 백작 보렐 2세가 프랑크 왕국에서 독립을 선포한 이래 약 1,000년 동안 자기 의회·법·언어를 유지해온 자치 국가에 가까웠습니다. 1137년 아라곤 왕국과 결혼 동맹을 맺어 아라곤 왕관국(Corona d’Aragó)이 되었고, 13~14세기에는 시칠리아·사르데냐·나폴리·아테네까지 지배하는 지중해 해상 제국이었습니다.

1469년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하면서 카탈루냐는 통일 스페인의 한 부분이 되지만, 1714년 9월 11일까지는 자체 의회·법·통화를 유지했습니다. 이날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카탈루냐를 지지한 합스부르크 측이 패배하면서 바르셀로나가 함락되었고, 부르봉의 펠리페 5세는 카탈루냐 자치권을 모두 박탈했습니다. 카탈루냐어 공식 사용도 금지되었습니다.

이 9월 11일을 카탈루냐 사람들은 “La Diada(라 디아다, 카탈루냐의 날)”이라 부르며 매년 대규모 시위와 인간 탑 쌓기(Castells) 등으로 추모합니다. 패배의 날이지만 동시에 카탈루냐 정체성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 시 카탈루냐는 공화국 측에 섰고, 1939년 프랑코의 승리 후 다시 한 번 자치권과 언어를 금지당했습니다. 1975년 프랑코 사망 후 1979년 카탈루냐 자치법이 통과되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카탈루냐 문화 부활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7년 10월 1일,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독립 국민투표를 강행했고 약 92%가 찬성했습니다(투표율 43%). 그러나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투표 자체를 무효로 판결했고, 자치정부 수반 카를레스 푸지데몬은 벨기에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카탈루냐 의회는 자치권을 일시 정지당했고, 현재까지 독립 문제는 스페인 정치의 가장 뜨거운 쟁점입니다.

안토니 가우디의 7대 걸작과 카탈루냐의 천 년 역사

4. 고딕 지구 — 2,000년의 도시 코어

고딕 지구(Barri Gòtic)는 람블라스 거리 동쪽, 비아 라이에타나 서쪽의 좁은 골목 구역입니다. BC 1세기 로마인이 세운 “바르키노(Barcino)”의 성벽 안쪽에 해당하며, 지금도 곳곳에서 로마 성벽의 잔해를 볼 수 있습니다.

지구 중앙의 바르셀로나 대성당(Catedral de Barcelona, 정식 명칭 라 세우 La Seu)은 1298~1450년에 걸쳐 지어진 고딕 양식 대성당입니다. 산타 에울랄리아(바르셀로나의 수호 성녀, 4세기 박해 순교)에 봉헌되었고, 회랑 안뜰에 13마리의 거위가 있는데 이는 산타 에울랄리아가 순교한 13세를 상징합니다.

대성당 옆 왕의 광장(Plaça del Rei)에는 15세기 아라곤 왕가의 옛 궁전이 있습니다. 콜럼버스가 1493년 첫 신대륙 항해에서 돌아와 페르난도와 이사벨을 알현한 자리가 바로 이곳의 “왕좌의 방(Saló del Tinell)”이라고 전해집니다. 바닥 일부는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 그대로입니다.

고딕 지구는 바둑판 같은 도시계획 이전의 미로형 골목이라 길이 자주 잃습니다. 그것이 매력입니다. 작은 광장, 1100년부터 영업한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성당, 정교한 공방, 작은 바(Bar)들이 골목마다 숨어 있습니다.

5. 람블라스 거리와 보케리아 시장

람블라스 거리(La Rambla)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콜럼버스 기념탑(60m)까지 1.2km로 이어지는 바르셀로나의 메인 보행자 거리입니다. “람블라”는 아랍어 “ramla(모래밭, 마른 시내)”에서 온 말로, 원래 도시 외곽의 마른 개천이었습니다. 18세기에 개천이 복개되면서 거리가 되었습니다.

거리에는 꽃 가게, 거리 공연, 신문 가판대, 동상 분장 예술가들이 늘어서 있고, 양쪽으로 카페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세상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단 하나의 거리”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만 관광객이 많아 소매치기·바가지가 매우 흔합니다 — 카메라·지갑·휴대폰 보안 필수.

람블라스 중간쯤 동쪽에 보케리아 시장(Mercat de Sant Josep de la Boqueria)이 있습니다. 13세기부터 이어진 식료품 시장이 1840년 현재의 철골 구조 건물로 옮겨졌습니다. 신선한 해산물, 이베리코 햄, 형형색색의 과일 주스(€2), 그리고 시장 안의 작은 바(Bar Pinotxo, El Quim)는 미슐랭 셰프들도 단골입니다.

람블라스의 동쪽 골목으로 한 블록 들어가면 광장(Plaça Reial)이 있고, 이곳의 가로등 두 개가 가우디가 1879년 27세 때 디자인한 그의 첫 공공 작품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의뢰를 받기 전, 시 공모전에서 당선된 디자인입니다.

6. 몬주익과 바르셀로네타 — 1992 올림픽의 무대

몬주익(Montjuïc)은 바르셀로나 항구 옆의 173m 언덕입니다. 이름은 “유대인의 산”이라는 중세 카탈루냐어에서 왔다고 합니다(중세 유대인 묘지가 있었음). 1929년 만국박람회와 1992년 올림픽이 모두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1929 만국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마법의 분수(Font Màgica de Montjuïc)는 매년 6~9월 저녁마다 음악·조명·분수가 어우러진 무료 쇼를 펼칩니다. 그 위쪽으로 1929 박람회 스페인관을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Pavelló Mies van der Rohe), 그리고 호안 미로 미술관(Fundació Miró, 1975 개관)이 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카탈루냐 정체성 부활의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개막식에서 양궁 선수 안토니오 레볼로가 화살로 성화를 점화한 장면이 명장면. 마라톤은 한국의 황영조가 우승한 그 올림픽이고, 한국 양궁이 압도적 성과를 거둔 대회이기도 합니다. 올림픽 경기장(Estadi Olímpic Lluís Companys, 56,000석)과 산트 조르디 체육관(Palau Sant Jordi, 일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 설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올림픽을 계기로 바르셀로나는 해안가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대규모 도시 재개발을 단행했습니다. 그전까지 공장·창고가 가득했던 바르셀로네타(Barceloneta) 해변이 약 4km의 모래 해변으로 재탄생했고, 항구 일대는 마리나·아쿠아리움·리조트가 들어선 휴양 지구가 되었습니다.

7. FC 바르셀로나와 캄프 누 — 단순한 클럽이 아닌

FC 바르셀로나(FC Barcelona, 별명 바르사 Barça)는 1899년 창단된 카탈루냐의 대표 축구 클럽입니다. 클럽 모토는 “Més que un club(클럽 그 이상)” — 카탈루냐 정체성의 상징이며, 프랑코 시대 카탈루냐어 사용이 금지되었을 때 캄프 누 경기장이 사실상 카탈루냐인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홈구장 캄프 누(Camp Nou, 1957 완공)는 유럽 최대 규모(99,354석)의 경기장입니다. 2023~2026년 대규모 리노베이션으로 약 105,000석으로 확장 예정이고, 그 기간 동안 1군 경기는 인근 올림픽 경기장에서 치러집니다.

FC 바르셀로나의 황금기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 시절(2008~2012)입니다. 메시·차비·이니에스타·부스케츠 — 라 마시아(La Masia) 유스 시스템 출신 7명이 동시에 선발로 출전한 2010년 11월 경기가 유명. 이 시기 4년 동안 챔피언스리그 2회, 라 리가 3회, 클럽월드컵 2회를 우승했습니다.

리오넬 메시는 13세에 아르헨티나에서 라 마시아에 입단해 2004~2021년 17년간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했고, 클럽 통산 778경기 672골이라는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2021년 PSG로 이적, 2025년 인터 마이애미에서 은퇴 후에도 캄프 누 박물관에는 그의 전용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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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화 속 바르셀로나 + 여행 정보

바르셀로나 여행 가이드 — 핵심 7개 명소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Vicky Cristina Barcelona)」(2008, 우디 앨런) — 페넬로페 크루스(아카데미 여우조연상)·하비에르 바르뎀·스칼릿 조핸슨·레베카 홀 주연.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두 미국인 여성과 카탈루냐 화가의 사랑 이야기. 사그라다 파밀리아·구엘 공원·고딕 지구·오비에도(작은 시퀀스) 등 도시 곳곳이 등장하며, 영화 자체가 바르셀로나의 관광 안내서처럼 작동합니다.

「향수(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2006, 톰 티크베어) — 톰 트위크워의 동명 소설 원작. 18세기 파리가 무대지만 실제 촬영의 80%는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좁은 골목과 중세 분위기가 18세기 파리를 재현하기에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올 어바웃 마이 마더(Todo sobre mi madre)」(1999, 페드로 알모도바르) —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무대인 모성과 정체성에 관한 영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

「본 아이덴티티」(2002) 시리즈, 「쾌락의 오두막(L’Auberge espagnole)」(2002, 에라스무스 학생 코미디), 「체셰어」 등 다양한 영화의 무대가 됩니다.

가는 길: 인천공항에서 바르셀로나(BCN) 직항은 없습니다. 마드리드 경유(스페인 국내선 1시간 30분 또는 고속철 AVE 2시간 30분), 파리·암스테르담·이스탄불·로마 경유.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고속철은 €40~80, 거의 매시간 운행. 공항에서 시내까지 에어로부스(공항버스) €7, 35분.

입장료 팁: 사그라다 파밀리아 €26(가이드 €36, 첨탑 추가 €10), 구엘 공원 €18, 카사 바트요 €35, 카사 밀라 €28. 모두 시간 지정 예약 필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일출 시간(8~9시)이 빛이 가장 아름답고 사람도 적습니다. Gaudí 4곳(사그라다+구엘+바트요+밀라) 통합권 €99(공식 사이트).

추천 시기: 5~6월(20~25도)과 9~10월(따뜻한 바다). 7~8월은 32도+ 해변 성수기로 모든 가격이 치솟고 사람도 가장 많습니다. 11~3월은 한산하지만 비. 메르세 축제(9월 24일경)와 라 디아다(9월 11일)는 거리 공연·인간 탑 쌓기 등 카탈루냐 문화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시기.

안전: 람블라스·고딕 지구·지하철은 소매치기가 매우 빈번합니다. 가방은 앞으로, 지갑은 안주머니, 휴대폰은 손에 들고 다니지 말 것. ATM은 은행 안쪽 이용 권장. 카탈루냐 광장·바르셀로네타 해변 일대도 주의 필요.

숙소: 그라시아 거리 근처 4성급 €180~350. 고딕 지구는 분위기 좋지만 골목이 좁아 캐리어 끌기 불편. 바르셀로네타 해변 일대는 휴양 분위기 €200~500. 한국 관광객은 보통 카탈루냐 광장 또는 그라시아 거리 인근이 교통·관광 둘 다 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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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FAQ)

Q1. 사그라다 파밀리아 첨탑은 꼭 올라가야 하나요?

체력과 시간이 있다면 권장합니다. 추가 €10에 탄생 파사드 또는 수난 파사드 첨탑 중 선택.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는 좁은 나선형 계단(약 400계단). 폐소공포증·고소공포증이 있다면 비추천. 시간이 부족하면 본관 관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Q2. 가우디 작품 중 시간이 부족하면 어디를 봐야 하나요?

1순위 사그라다 파밀리아, 2순위 구엘 공원, 3순위 카사 바트요 또는 카사 밀라(둘 다 그라시아 거리 같은 블록이라 외관만 봐도 됨). 사그라다 파밀리아 + 구엘 공원 + 그라시아 거리 도보 산책 = 6~8시간 코스로 가우디의 핵심을 다 볼 수 있습니다.

Q3. 카탈루냐어를 알아야 하나요?

아닙니다. 스페인어(카스티야어)와 영어로 모든 관광·식당·교통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카탈루냐어로 “Bon dia(안녕하세요, 본 디아)” “Gràcies(감사합니다, 그라시에스)” 정도만 알아두면 카탈루냐 사람들이 반가워합니다. 거리 간판이나 메뉴는 카탈루냐어로만 적힌 경우가 많아 사진 번역기가 유용합니다.

Q4. FC 바르셀로나 경기 입장권은 어떻게 구하나요?

공식 홈페이지(fcbarcelona.com)에서 라 리가 경기 €60~250, 챔피언스리그 €150~500. 메시 은퇴 후에도 인기는 여전. 2023~2026년 캄프 누 공사 기간에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리니 좌석 위치 확인 필요. 경기 없는 날에는 캄프 누 박물관 투어(€32)가 가능합니다.

Q5. 바르셀로나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은?

파에야(Paella, 발렌시아 출신이지만 바르셀로네타 해변 식당이 유명), 타파스(보케리아 시장 또는 고딕 지구의 작은 바), 판 콘 토마테(Pa amb tomàquet, 토마토 즙을 바른 빵, 카탈루냐의 국민 음식), 칼솟(Calçots, 1~3월 한정 카탈루냐식 양파 구이), 크레마 카탈라나(카탈루냐식 크렘 브륄레), 그리고 카바(Cava, 카탈루냐산 스파클링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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