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속 역사 #8] 드라마 《파친코》 — 영도에서 오사카까지, 재일조선인 4대 100년사

2022년 3월 25일, Apple TV+에 한 편의 드라마가 공개됐다. 《파친코(Pachinko)》—재미교포 작가 이민진(Min Jin Lee)의 2017년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8부작 시리즈였다. 첫 회 오프닝—1989년 도쿄에서 시작해 1915년 부산 영도로 거슬러 올라가는 4세대의 카메라 워크—만으로도 전 세계 시청자는 충격에 빠졌다. 한국어·일본어·영어가 한 화면에 동시에 흐르고, 자막마저 언어별로 다른 색으로 표시되는 형식적 실험. 그러나 그 형식 안에 담긴 것은 한 가족의 100년에 걸친 ‘한국인이지만 일본에 사는 사람들’—재일조선인의 이야기였다. 1910년 한일합방부터 1989년 일본 버블 시대까지 4세대를 가로지르는 이 서사시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잊혀진 한 챕터를 글로벌 무대에 처음 본격적으로 끌어올린 작품이었다.

파친코 4대 가족과 시대

1. 이민진의 30년 — 한 강연의 한 줄에서 시작된 소설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는 미국 문학계에서 한국계 디아스포라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2017년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미국 도서상(National Book Award) 결선, BBC 100대 소설에 선정되었고, 24개국에 번역되었다. 작가 이민진은 1968년 서울 출생, 7세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1.5세대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녀가 이 소설을 쓰는 데는 무려 30년이 걸렸다. 1989년 예일대 학부 시절 일본 학자의 강연에서 “일본에서 차별받는 재일조선인 청년이 자살했다“는 한 줄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녀는 그 후 30년에 걸쳐 한국·일본을 오가며 수십 명의 재일조선인을 인터뷰해 소설을 완성했다. 그래서 소설의 모든 디테일—오사카 이쿠노 거리, 파친코 가게 분위기, 재일 가족의 식탁—은 모두 실제 인터뷰에 기반한 사실이다.

쿠팡 추천 상품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2. 1933년 영도→오사카 — 80만 조선인의 이주

드라마는 1915년 부산 영도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선자(김민하 청년 시절 / 윤여정 노년 시절)는 영도의 작은 하숙집 딸로 태어나, 16세에 야쿠자(재일 조직 폭력단) 고한수(이민호)와 사랑에 빠져 임신한다. 그러나 한수가 이미 일본에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임을 알게 된 선자는 그의 도움을 거부하고, 마침 영도를 지나던 평양 출신 결핵 환자 목사 백이삭과 결혼해 일본 오사카로 이주한다. 1933년의 일이다. 이 설정은 가공이지만, 1930년대 한반도에서 일본 본토로 이주한 조선인 패턴을 정확히 반영한다. 당시 약 80만 명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강제·자발 이주했고, 그중 상당수가 오사카·도쿄·후쿠오카의 빈민가에 정착했다. 오사카 이쿠노(生野)는 그중 가장 큰 재일조선인 거주지였으며, 지금도 일본 최대 코리아타운으로 남아 있다.

파친코 출연진과 작품 정보

3. 외국인 등록령과 일본 사회의 차별

드라마가 그리는 일본 거주 조선인의 삶은 한 마디로 차별이다. 선자와 가족은 셋방조차 빌리기 어렵고, 일자리는 가장 더럽고 위험한 일밖에 없다. 자녀들은 학교에서 ‘조센진(朝鮮人)‘이라 놀림받으며 일본 이름(통명, 通名)을 강제로 써야 한다. 이는 모두 사실이다. 1947년 일본은 외국인 등록령을 시행해 모든 재일조선인을 ‘외국인’으로 분류했고, 일본 국적을 박탈했다. 이로 인해 재일조선인은 ① 투표권 없음, ② 공무원 취업 금지, ③ 일부 국립대 입학 제한, ④ 의료보험·국민연금 가입 제한 등 광범위한 차별을 받았다. 1965년 한일협정 후 ‘협정영주’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차별은 계속되었다. 21세기인 지금도 일본 사회의 우익 단체는 정기적으로 코리아타운에서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 시위를 벌인다.

쿠팡 카테고리 추천

4.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 6천 명의 진실

드라마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는 1923년 관동대지진을 회상하는 부분이다.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요코하마 일대에 진도 7.9의 거대 지진이 발생했고, 약 10만 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지진 직후 일본 사회에 충격적인 유언비어가 퍼졌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라는 가짜 정보였다. 일본 군과 경찰의 묵인·방조 아래, 자경단을 조직한 일본인들이 도쿄·요코하마 일대의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추정 사망자는 약 6,000~10,000명. 단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100년 가까이 인정하지 않은 사건이지만, 1923년 9월 4일자 일본 내무성 기밀 문서에서 학살 사실이 확인되었고, 2003년 일본 민간 단체가 학살 추모비를 처음으로 세웠다. 드라마 《파친코》는 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며 시즌 1의 가장 큰 정서적 무게를 형성한다.

재일조선인 차별 역사

5. 왜 재일조선인이 파친코를 운영하는가

드라마의 제목 “파친코”는 단순한 도박 기계 이름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의 삶을 함축하는 상징이다. 파친코는 일본의 합법적 도박 산업으로, 시장 규모가 약 25조 엔(약 250조 원, 한국 GDP의 약 15%)에 이르는 거대 산업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거대 산업의 약 70%를 재일조선인이 운영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답은 차별의 역사에 있다. 해방 후 일본 사회에서 정상적인 직업(공무원·대기업·은행)에 취업할 수 없었던 재일조선인이 일본인이 꺼리는 ‘도박업’을 하나의 생계 수단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즉 파친코는 ‘다른 길이 막힌 사람들의 길’이었다. 드라마 속 선자의 차남 모자수가 파친코 사업을 시작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그것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모습은 정확히 재일 2~3세대의 실제 정체성 갈등을 반영한다.

6. 한국에도 일본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

드라마 《파친코》가 한국 시청자에게 가장 충격을 준 부분은 “우리가 이 사람들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자각이었다. 재일조선인은 단순히 일본에 사는 한국계가 아니다. 그들은 ① 일본 정부의 차별 정책에 시달리고, ② 한국 정부에는 사실상 잊혀져 있으며, ③ 자기들끼리도 남한계(민단)·북한계(조총련)로 갈라져 있다. 1959~1984년 약 9만 3천 명이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이주했는데, 그중 많은 이가 북한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 사망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 개선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즉 그들은 ‘한국인’이라 자처하지만 한국에 살지 못하고, ‘일본인’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차별받는 이중의 경계인이었다. 드라마는 이 이중 정체성을 70년의 시간에 걸쳐 보여준다.

7. 윤여정·이민호·김민하 — 캐스팅 자체가 메시지

드라마의 캐스트는 그 자체가 메시지다. 노년 선자 역의 윤여정(1947~)은 2020년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다. 그녀의 캐스팅은 단순한 흥행 카드가 아니라 “한국계 디아스포라 서사의 글로벌 진출”을 상징했다. 청년 선자 역의 김민하는 신예였으나 이 작품으로 단번에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 야쿠자 고한수 역의 이민호(1987~)는 한류 스타로서 글로벌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또한 솔로몬 역의 진하(Jin Ha)는 재미교포 배우, 나오미 역의 안나 사와이는 일본계 배우로 각각의 출신 배경이 캐릭터와 일치한다. 이 캐스팅은 “재일조선인 이야기는 한국·일본·재미 모든 디아스포라가 함께 만든다”는 메시지의 시각화였다. 시즌 2(2024)에서는 정 종(Junho)이 추가되며 한류 스타 캐스팅이 더 강화되었다.

8. 잊고 있던 사람들에게 보내는 뒤늦은 미안함

📖 미스터 션샤인 — 의병 시대의 한국사

드라마 《파친코》의 마지막 회 자막에 이런 문장이 흐른다. “이 작품을 모든 한국 여성에게 바칩니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그들이 우리를 살아남게 했습니다.” 이 한 문장이 《파친코》의 모든 것을 요약한다. 영도의 양진(선자의 어머니)부터 오사카의 선자, 그리고 그녀의 며느리들까지—그들은 학자도 영웅도 정치가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가족을 먹이기 위해 김치를 담그고 빨래를 하고 시장에 앉아 있었던 평범한 여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일상이 한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한 챕터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의 모든 것—K-팝, K-드라마, 글로벌 한류—은 사실 영도에서 오사카로 가는 그 배 위에서, 그리고 이쿠노의 작은 김치 가게에서 시작되었다. 《파친코》는 그동안 우리가 외면해왔던 그 시작점을 다시 보여주는 작품이다. 1,761만의 《명량》, 1,270만의 《암살》, 1,232만의 《광해》가 한국인에게 자긍심을 주는 영화였다면, 《파친코》는 우리에게 다른 종류의 감정을 일깨운다—그것은 잊고 있던 사람들에게 비로소 보내는 뒤늦은 미안함과 감사다.

쿠팡 추천 상품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재일조선인은 정확히 누구인가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 본토로 이주한 조선인과 그 후손을 가리킵니다. 해방 후 일본에 잔류한 약 60만 명을 1세대로 하여, 현재 약 50만 명(귀화한 사람 제외)이 일본에 거주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민단(남한계)과 조총련(북한계)으로 나뉘며, 4세대까지 일본에서 태어났음에도 일본 국적이 없는 사람이 다수입니다.

Q2. 왜 재일조선인이 파친코를 많이 운영하나요?

해방 후 일본 사회에서 정상적인 직업(공무원·대기업·은행)에 취업할 수 없었던 재일조선인이 일본인이 꺼리던 도박업을 생계 수단으로 선택한 결과입니다. 현재 일본 파친코 산업의 약 70%를 재일조선인이 운영하며, 시장 규모는 약 25조 엔에 달합니다. 즉 파친코는 차별의 결과이자 그 차별을 견뎌낸 생존의 상징입니다.

Q3.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정말 사실인가요?

네, 명백한 사실입니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퍼졌고, 일본 군경의 묵인·방조 아래 자경단이 조직되어 조선인을 학살했습니다. 추정 사망자는 약 6,000~10,000명입니다. 1923년 9월 4일자 일본 내무성 기밀 문서에서도 학살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2003년 일본 민간 단체가 학살 추모비를 처음 세웠습니다. 일본 정부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식 사과나 진상조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Q4. 파친코 시즌 3는 언제 나오나요?

2024년 시즌 2 공개 후 Apple TV+가 시즌 3·4 제작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쇼러너 수 휴(Soo Hugh)는 원작 소설을 4시즌에 걸쳐 완전히 담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시즌 3는 2025~2026년 공개 예정으로 알려져 있으며, 윤여정·이민호·김민하 등 주요 출연진이 모두 계속 출연합니다.

Q5. 파친코의 무대인 오사카 이쿠노를 가볼 수 있나요?

네. 오사카 이쿠노(生野) 지역은 현재도 일본 최대 코리아타운으로, 츠루하시(鶴橋) 역 인근의 츠루하시 시장과 미유키도리 상점가가 대표 코스입니다. 한국 식료품·김치·반찬 가게가 줄지어 있고, 1세대 재일조선인의 정착 역사를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도 있습니다. 부산-오사카는 항공편으로 약 1시간 30분 거리로 당일치기 답사도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Powered by 워드프레스닷컴.

Up ↑

역사의 창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