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90만 년 전, 동아프리카의 어느 평원에서 새로운 종의 인류가 등장했다. 학명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우리말로 ‘직립인간’. 그러나 이름은 오해를 부른다. 두 발로 걸은 건 그보다 훨씬 이전, 사헬란트로푸스 시절부터였다. 호모 에렉투스의 진짜 혁명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간 것’에 있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나 구대륙 전체로 퍼져나간 종이다. 인류가 ‘글로벌’이 된 출발점이 바로 여기다.

호모 에렉투스는 그 이전의 어떤 인류와도 달랐다. 키는 170~180cm로 현대인과 같았고, 다리는 길고 골반은 좁아 장거리 걷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두뇌 용량은 900cc로 호모 하빌리스의 1.5배에 달했다. 외모상으로도 더 이상 ‘원숭이 닮은 사람’이 아니라, 분명히 ‘사람 닮은 사람’이었다. 단지 눈썹뼈가 더 두껍게 돌출되어 있고, 턱이 작으며, 두개골이 두꺼웠을 뿐이다. 그들을 거리에서 마주친다면, 우리는 그저 ‘특이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신체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머리 안쪽과 손 끝에 있었다. 약 17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아슐리안(Acheulean) 주먹도끼’를 만들기 시작했다. 양면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눈물방울 모양의 다용도 도구다. 그 이전의 올도완 찍개가 한 면을 5~6번 깨뜨린 단순한 형태였다면,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양면을 수십 번 정교하게 가공해 완벽한 대칭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인지 혁명의 증거다. 대칭을 만들기 위해서는 ‘완성된 모양’을 미리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인류 최초로 추상적 사고가 가능했던 종일지 모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호모 에렉투스는 불을 다루기 시작했다. 약 100만 년 전 남아프리카 원더베르크 동굴, 약 80만 년 전 이스라엘 게셔 베노트 야아콥 등에서 발견된 화덕 흔적이 그 증거다. 불은 단순히 추위를 막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익힌 음식은 영양 흡수율을 30~50% 끌어올렸고, 이는 두뇌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밤에도 활동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적 관계와 언어가 발달할 시간이 생겼다. 인류가 ‘사회적 동물’이 되는 첫 단추가 모닥불 주변에서 꿰어졌다.
이런 능력을 등에 업고, 약 180만 년 전 그들은 아프리카를 떠나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아프리카 외부 흔적은 조지아의 드마니시(Dmanisi) 유적, 약 185만 년 전이다. 그 후 100만 년 동안 그들은 놀라운 속도로 확산됐다. 약 170만 년 전 인도네시아 자바섬(자바원인), 약 80만 년 전 중국 베이징(베이징원인), 약 70만 년 전 한반도(평양 검은모루 동굴) 등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유럽 쪽으로도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영국 박스그로브 등으로 진출했다. 그들은 사하라부터 베이징까지, 자바부터 영국까지 — 거의 모든 따뜻한 땅을 차지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생존 기간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약 180만 년 전 등장해 약 10만 년 전까지 살아남았다. 무려 170만 년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지 30만 년에 불과한 우리는, 호모 에렉투스의 기록을 따라잡으려면 앞으로 140만 년을 더 살아남아야 한다. 같은 종 안에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변했고, 일부 후기 집단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나 호모 안테세소르 같은 별개 종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호모 에렉투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종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사라졌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응안동(Ngandong)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마지막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은 약 11만 년 전의 것이다. 그 무렵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두 종이 어디서, 어떻게 마주쳤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호모 에렉투스가 사라진 자리에 우리가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것은, 어디서나 새로운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그리고 무엇보다 모르는 땅을 향해 떠날 용기를 가진 것은 — 모두 19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지평선 너머를 바라본 한 종의 결정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호모 에렉투스의 후예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명확하다. 인류 최초로 ‘여기서 멈추지 않겠다’고 결정한 그 의지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호모 에렉투스가 뭔가요?
약 190만 년 전 등장한 인류 종으로, 키 170~180cm, 두뇌 900cc로 현대인과 비슷한 체격을 가졌습니다. 인류 최초로 아프리카를 떠난 종입니다.
Q2. 호모 에렉투스는 어디까지 퍼졌나요?
아프리카, 유럽(스페인 아타푸에르카), 중국(베이징원인), 인도네시아(자바원인), 한반도(검은모루 동굴) 등 구대륙 전체로 확산됐습니다.
Q3. 아슐리안 주먹도끼란?
호모 에렉투스가 약 170만 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양면 정교 가공 도구입니다. 대칭형 눈물방울 모양으로, 추상적 사고의 첫 증거입니다.
Q4. 호모 에렉투스는 불을 사용했나요?
약 100만 년 전부터 불을 다뤘습니다. 익힌 음식은 영양 흡수율을 높여 두뇌 발달을 가속했습니다.
Q5. 호모 에렉투스는 얼마나 오래 살아남았나요?
약 180만 년에 걸쳐 살아남아 인류 종 중 가장 오래 생존한 종입니다. 호모 사피엔스(30만 년)의 6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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