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어느 봄날, 충남 공주 금강 하구의 한 자갈밭. 미국 위스콘신대 박사과정생이던 앨버트 모어(Albert Mohr) 박사 부부가 한반도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강가에 흩어진 돌들을 살피게 되었다. 그들은 곧 한 손에 잡힐 만한 돌을 집어 들었다. 자갈을 깨뜨려 만든 아주 명백한 사람의 솜씨. 격지가 떨어져나간 흔적, 의도적으로 다듬어진 날. 그것은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사람의 도구였다. 그날 한국 구석기 연구의 역사가 시작됐다.
발견된 곳은 공주 석장리(石壯里)였다. 모어 박사 부부의 제보를 받은 연세대 손보기 교수는 곧 본격 발굴 조사에 착수했다. 1964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28년에 걸친 발굴이 이어졌다. 그 결과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는지조차 의심받던 시절, ‘한국에는 구석기 시대가 분명히 있었고, 그것도 매우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증명한 결정적 유적이 되었다.

석장리의 진짜 가치는 단일 시기 유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발굴팀은 금강 자갈층 위에 켜켜이 쌓인 12개의 문화층을 확인했다. 가장 아래층은 약 30만 년 전의 전기 구석기, 그 위로 10만 년 전 중기 구석기, 3만 년 전 후기 구석기, 그리고 6,000년 전 신석기까지. 한 장소에서 30만 년 동안 사람이 살았다는 의미다. 같은 자리에서 후손이 후손을 이어가며 강과 함께 살아온 30만 년의 기록이 흙 한 줌마다 들어 있었다.
각 층에서는 그 시대의 특징적인 도구가 출토됐다. 가장 아래 전기 구석기층에서는 주먹도끼, 찍개, 자갈돌 격지 같은 거친 도구가 나왔다. 중기 구석기층에서는 좀 더 정교한 긁개, 톱니날, 격지 도구. 후기 구석기층에서는 정교한 슴베찌르개, 좁고 긴 돌날, 흑요석으로 만든 정밀한 도구가 출토됐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구석기 시대 전 시기의 도구가 한 유적에서 모두 발견된 것이다.

도구뿐만이 아니었다. 석장리에서는 한반도 최초로 구석기 시대의 화덕 자리가 확인됐다. 약 7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중기 구석기층에서 발견된 이 화덕은, 한반도 사람들도 그 시기에 이미 불을 다루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호모 에렉투스가 백만 년 전부터 불을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시점이지만, ‘한반도 사람’이 불을 다뤘다는 직접 증거가 처음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석장리 발굴이 가져온 학문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960년대까지 일본 학계는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부터라는, 식민사관의 잔재가 짙게 깔린 주장이었다. 석장리 발굴은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리고 14년 뒤인 1978년 연천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한반도 구석기는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되었나’의 문제로 바뀌었다.

발굴자 손보기 교수는 ‘석장리는 한국 구석기 연구의 출발점이자 학교’라고 회고했다. 28년의 발굴 동안 연인원 수천 명의 학생과 연구자가 이곳에서 발굴을 배웠고, 그들이 다시 한반도 곳곳의 구석기 유적을 발굴해나갔다. 단양 수양개, 청원 두루봉, 화순 대전, 곡성 옥과리, 단양 상시 바위그늘 등 한반도 구석기 지도가 채워진 것은 모두 석장리에서 출발한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였다.
오늘 공주 석장리에는 석장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발굴된 도구들이 전시되고, 발굴 당시의 단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박물관 한쪽에는 1964년 봄 모어 박사가 처음 돌을 주웠던 그 강가가 보인다. 그 자갈밭 어디쯤에서, 30만 년 전 누군가가 같은 강가에 앉아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돌이 1964년 어느 미국인 박사의 손에 다시 잡힌 순간, 30만 년의 시간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 한국 구석기 연구는 그 만남에서 시작됐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공주 석장리 유적은 언제 발견됐나요?
1964년 봄, 미국 위스콘신대 박사과정 모어(Mohr) 박사 부부가 공주 금강 하구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Q2. 석장리는 얼마나 오래된 유적인가요?
가장 아래층은 약 30만 년 전(전기 구석기), 상부는 6천 년 전(신석기)까지 12개의 문화층을 가진 한반도 구석기 전 시기 망라 유적입니다.
Q3. 석장리에서 발견된 주요 유물은?
주먹도끼·찍개(전기 구석기), 긁개·톱니날(중기), 슴베찌르개·돌날(후기 구석기) 등 다양한 도구와 한반도 최초의 구석기 화덕 자리가 발견됐습니다.
Q4. 석장리 발굴이 갖는 의미는?
1960년대까지 일본 학계가 주장한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다”는 식민사관을 정면으로 반박한 결정적 유적입니다.
Q5. 석장리박물관은 어디에 있나요?
충남 공주시 석장리미륵당길 17에 위치하며, 발굴된 도구들과 발굴 단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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