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7일, tvN에 한 편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김은숙 작가, 이응복 감독, 이병헌·김태리 주연의 《미스터 션샤인(Mr. Sunshine)》. 제작비 약 400억 원의 역대급 규모, 24부작이라는 긴 호흡, 그리고 무엇보다 1871년 신미양요부터 1907년 정미의병까지 36년의 격동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었다. 마지막 회 시청률 18.1%,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며 한국 드라마의 한 정점을 찍은 이 작품은 단순한 멜로 드라마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시대극이었다. 드라마 속 사람들은 어디까지가 가공이고 어디까지가 실재했을까. 유진 초이는 정말 있었을까. 고애신 같은 양반 여성 의병이 실제로 있었을까. 드라마가 끝난 자리에서 진짜 역사를 들여다본다.

1. 1871년 신미양요 — 유진 초이의 가공 출발점
드라마의 시작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다. 미국이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으로, 어린 유진 초이가 미국 군인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으로 영상이 열린다. 그러나 실제로 신미양요 당시 미국으로 끌려간 조선인은 거의 없었다. 약 5일간의 전투 끝에 조선군 전사자 약 350명, 미군 전사자 3명이라는 일방적 결과로 끝났고, 미군은 통상 요구를 관철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즉 유진 초이의 출생 설정은 드라마적 허구다. 다만 그 모티프가 된 인물들은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간 조선인—황기환(黃玘煥)·서재필(徐載弼)·박용만(朴容萬) 등—은 후일 한국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특히 황기환은 1차 세계대전 때 미군 항공대에 자원입대해 한반도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외교 활동을 펼쳤다. 유진 초이는 이런 실존 인물들의 변형판인 셈이다.
2. 을미사변(1895) — 드라마보다 잔혹했던 실제
드라마의 중심 사건 중 하나는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년 10월 8일)이다. 일본 낭인과 군인이 경복궁 건청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이다. 드라마에서는 이 장면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그 충격적 결과만 다루는데, 실제는 드라마보다 더 잔혹했다.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계획 하에 약 50명의 일본 낭인이 새벽 경복궁에 침입, 황후를 살해한 뒤 시신을 옥외 잔디밭에서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영국 외교관 새토우(Ernest Satow)·미국 공사 알렌(Horace Allen)도 보고서에 기록한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사건 후 가담자들을 형식적 재판에 회부했다가 모두 무죄로 석방했다. 이 사건은 후일 의병 봉기(을미의병)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고, 드라마 후반부의 모든 사건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3. 을사늑약(1905)과 을사오적 — 모두 실존 인물
드라마는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과 그 결과인 통감부(統監府) 설치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일본의 첫 통감으로 부임한 인물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드라마에서도 실명으로 등장한다. 그는 1905년 11월 17일 군대를 동원해 덕수궁을 포위하고, 고종 황제의 인장 없이 외부대신 박제순의 도장으로 조약을 강제로 체결시켰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했다. 고종 황제는 끝까지 조약을 인준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학계는 이를 ‘늑약(勒約)’—강제로 체결된 가짜 조약—이라 부른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매국 5인—이지용·박제순·이근택·이완용·권중현, 이른바 ‘을사오적(乙巳五賊)’—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이들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사에서 가장 비난받는 이름들로 남아 있다.
4. 헤이그 특사 — 이상설·이준·이위종의 진짜 임무
드라마 후반부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이다. 고종 황제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비밀리에 보낸 세 명의 특사—이상설(李相卨)·이준(李儁)·이위종(李瑋鍾)—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그들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가짜 조약임을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1907년 6월 헤이그에 도착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 출입을 거부당했다. 이준 열사는 그 좌절 속에서 7월 14일 헤이그에서 순국했다(분사설·자결설 등 사인은 논쟁 중). 이 사건이 알려지자 일본은 격분해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1907년 7월 20일)시키고,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요해 한국 행정권을 사실상 장악했다. 그리고 1907년 8월 1일—마침내 운명의 날이 왔다. 대한제국 군대 해산.
5. 1907년 8월 1일 — 박승환 참령의 자결
1907년 8월 1일 오전 10시, 서울 훈련원. 대한제국 시위대 1대대 장병들이 군복을 벗고 무기를 반납했다. 그러나 1대대장 박승환(朴昇煥) 참령은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니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결했다. 이 자결 소식이 전해지자 1·2대대 장병들이 무기를 들고 일본군에 맞섰다. 이른바 ‘시위대 봉기’다. 약 600명의 한국 군인이 일본군 약 1,200명과 4시간 동안 격전을 벌였고, 한국군 68명·일본군 27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결국 압도적인 무기 격차로 진압되었다. 드라마 마지막 부분은 이 사건과 그 직후 시작된 정미의병(丁未義兵)을 정면으로 다룬다. 드라마의 클라이맥스가 단순한 멜로의 절정이 아니라 실제 역사의 가장 격렬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6. 정미의병 14만 — 드라마 너머의 거대한 항쟁
1907~1915년 정미의병의 규모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다. 일본 측 자료(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1907~1910년 4년간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는 총 2,819회, 의병 참여자 약 14만 명, 의병 전사자 약 17,700명, 부상자 약 36,000명에 이르렀다. 특히 1908년 한 해에만 1,451회의 전투가 벌어져 그 절정을 이뤘다. 즉 정미의병은 단순한 산발적 저항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거대한 전면 항쟁이었다. 드라마에 등장한 의병장들의 모티프가 된 실존 인물들도 많다. 신돌석(태백산 호랑이), 이강년(영남), 민종식(충청), 이은찬(경기), 허위(서울)—이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대부분 1908~1911년 사이에 전사하거나 처형당했다. 또한 드라마의 고애신처럼 양반 여성 의병장도 실제로 존재했다. 윤희순(尹熙順)은 강원도 춘천에서 여성 의병을 조직해 시아버지·남편과 함께 항일 활동을 했고, 남자현(南慈賢)은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과 협력하며 1933년 일본 만주국 대사 부토 노부요시 암살을 시도했다.

7. 드라마는 어디까지 사실에 충실했나
그렇다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역사적 사실에 얼마나 충실했을까. 큰 사건의 흐름은 거의 정확하다. 신미양요·을미사변·아관파천·대한제국 선포·러일전쟁·을사늑약·헤이그 특사·군대 해산·정미의병—모두 실제 일어난 일을 시간순으로 정확히 배치했다. 또한 일본의 통치 방식, 친일파의 형성, 의병의 활동 양상도 사료에 부합한다. 다만 개별 캐릭터는 대부분 가공이며, 일부 일본인 캐릭터들의 잔혹성은 실제보다 다소 약하게 그려진 측면도 있다(특히 일본군의 의병 가족 학살은 드라마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드라마의 마지막 자막에 나온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의병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는 단순한 헌사가 아니라, 실제 14만 명의 의병과 17,700명의 전사자에게 보내는 한국 사회의 뒤늦은 감사였다.
8. 한 편의 드라마가 살려낸 14만 개의 이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한국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단순한 흥행이 아니라, 잊혀져 있던 ‘정미의병’이라는 이름을 다시 일상의 언어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드라마 방영 후 강원도·경기도 일대의 의병 유적지 방문객이 급증했고, 의병장 신돌석·이강년 관련 검색량이 폭증했으며, 한 통신사 조사에 따르면 30·40대의 78%가 “드라마를 보고 처음으로 의병에 대해 진지하게 알게 되었다”고 답했다. 한 편의 드라마가 100여 년 전 잊혀진 사람들의 이름을 다시 살려낸 것이다. 1871년 강화도에 미국 함대가 들어오던 그날부터 1907년 8월 1일 서울 훈련원에서 박승환 참령이 자결하던 그날까지, 그 36년은 한국이 가장 많이 잃은 시간이자 동시에 가장 강하게 저항한 시간이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이순신 인물 열전 — 또 다른 한국 역사의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