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13] 부산 동삼동 패총 — 8천 년 전 바다 사람들의 4미터 타임캡슐

부산 영도구의 한 언덕에 가면 평범한 동네 풍경 속에 숨겨진 거대한 시간의 단면이 있다. 동삼동 패총(東三洞 貝塚)—약 8,000년 전 신석기인들이 굴과 조개를 까먹고 그 껍질을 한곳에 쌓아둔 자리다. 한 사람의 식사가 한 세대의 살림이 되고, 한 세대의 살림이 4,000년 동안 4미터 두께로 쌓이면서 거대한 ‘조개무지‘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쓰레기 더미가 아니라, 한반도 신석기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는지·어떻게 살았는지·누구와 교역했는지를 그대로 보존한 거대한 타임캡슐이었다.

동삼동 패총 위치 지도

1. 조개 무덤이라는 이름의 보물 창고

‘패총(貝塚)’은 한자 그대로 ‘조개 무덤’이다. 신석기 사람들이 굴·조개·전복·고둥을 까먹은 뒤 껍질을 한곳에 버린 곳이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고고학적으로는 보물 창고다. 조개껍질이 칼슘 알칼리성 환경을 만들어 일반 흙에서는 녹아 사라질 동물뼈·인골·식물 씨앗까지 잘 보존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동·남해안에 패총이 100여 곳 분포하지만, 그중에서도 부산 동삼동 패총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풍부한 유물을 남긴 핵심 유적이다. 1929년 일본인 학자 요코야마 쇼자부로가 처음 발견했고, 1963~64년 미국·한국 합동 발굴 이후 본격 연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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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000년이 4미터에 — 신석기 표준 단면

동삼동 패총의 형성 시기는 약 BC 6,000년부터 BC 2,000년까지, 무려 4,000년에 이른다. 우리가 보통 ‘신석기 시대’라고 부르는 한반도 신석기 전 기간이 한 유적 안에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패총 단면을 보면 5개 문화층으로 구분된다. 가장 아래층(BC 6,000~5,000)은 한반도 최초의 정착 흔적이고, 표층은 청동기·역사시대까지 이어진다. 가장 두꺼운 부분은 약 4m. 한 층 한 층이 한 시대의 살림이고, 4m 단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면 4천 년의 시간을 한 번에 만지는 셈이다.

패총 단면도

3. 굴에서 고래까지 — 8천 년 전 식탁

그렇다면 신석기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동삼동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참굴·홍합·전복·고둥 같은 조간대 패류다. 영도 일대는 따뜻한 해류가 들어오는 갯바위 천국이라 굴과 전복이 풍부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어종이 점점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잡기 쉬운 작은 물고기 위주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참치·다랑어·상어·고래 같은 원양 어종이 늘어났다. 작살과 그물추도 함께 발견되었다. 즉, 통나무배(독목주, 獨木舟)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는 해양 어로가 BC 4,000년경부터 본격화된 것이다. 한반도 사람들은 이미 8천 년 전부터 ‘바다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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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빗살무늬토기 — 한반도 신석기의 얼굴

동삼동의 가장 대표적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다. 빗으로 그은 듯한 사선·물결·생선뼈무늬가 새겨진 V자형 뾰족 밑 토기로, 한반도 신석기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그러나 모든 시대가 빗살무늬는 아니다. 가장 오래된 층에서는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굵은 띠를 덧붙여 무늬를 낸 토기—가 나왔고, 시대가 흐르며 빗살무늬로 바뀌었다. 토기의 변화는 곧 식생활의 변화를 보여준다. 생선국을 끓이고 도토리를 갈아먹고 곡물을 저장하는—요리법과 식단이 4천 년 동안 진화한 흔적이다.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시대의 지문(指紋)인 것이다.

5. 일본에서 온 흑요석 — 8천 년 전 한일 교역

동삼동에서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흑요석이었다. 흑요석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지는 검은 유리질 돌로, 칼이나 화살촉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재료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흑요석 산지가 백두산 일대에 한정되어 있다. 동삼동에서 나온 흑요석을 분석해보니—놀랍게도 일본 규슈(九州)의 사가현 코시다케 산지에서 온 것이었다. 8,000년 전 한반도 사람과 일본열도 조몬(縄文) 사람들이 대한해협을 건너 흑요석을 교역했다는 결정적 증거다. 반대로 동삼동에서는 일본 규슈 조몬계 토기 조각도 함께 출토되었다. 한일 양방향 교역이었던 것이다. 통나무배 한 척으로 250km의 바다를 건넌 8천 년 전 사람들의 도전이 거기에 새겨져 있다.

동삼동 출토 유물

6. 조개 가면 — 신석기인의 정신세계

동삼동에서 출토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유물은 조개 인면(人面)이다. 굴 껍질에 사람 얼굴—두 눈과 입에 해당하는 구멍을 뚫은 가면이다. 이런 조개 가면은 한반도에서 동삼동에서만 발견된 유일한 사례다. 무엇에 썼을까. 학자들은 신석기 사람들의 의례·주술·장례에 사용된 것으로 본다. 즉, 신석기인들에게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정신문화·종교적 사고가 있었다는 증거다. 또한 사슴뿔로 만든 빗·뼈로 만든 바늘과 단추·동물 모양 토우(土偶)도 나왔다. 그들은 옷을 짓고, 머리를 다듬고, 동물 형상을 빚었다. 8천 년 전이지만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7. 동삼동의 세 가지 의미

동삼동 패총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첫째, 한반도 신석기의 표준 편년—덧무늬토기 → 빗살무늬토기로 이어지는 시대 구분의 기준이 동삼동 단면에서 정립되었다. 둘째, 한일 교류의 가장 오래된 물증—흑요석과 조몬계 토기가 8,000년 전 양방향 해상 교역을 증명한다. 셋째, 해양 어로 문화의 원형—한반도가 처음부터 ‘바다의 문명’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세 가지 의미 때문에 동삼동 패총은 1979년 사적 제266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부산 영도에는 동삼동패총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 작은 언덕이지만, 거기 서면 8천 년 전 한반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한 눈에 보인다.

8. 우리가 잊고 있던 첫 조상

우리는 보통 한국사를 단군신화나 고조선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삼동 패총은 우리에게 다른 시작을 보여준다. 단군 이전, 글자도 나라도 없던 시대—그 8,000년 전에 이미 한반도 남해안에는 굴을 까먹고, 작살로 참치를 잡고, 통나무배로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과 교역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빗살무늬토기에 음식을 끓였고, 조개 가면을 쓰고 의례를 치렀으며, 흑요석으로 화살을 만들었다. 그들이 우리의 첫 조상이다. 우리가 지금 부산항에서 일본 후쿠오카로 배를 띄우는 그 항로는, 사실 우리 선조들이 8,000년 전부터 다녀온 바닷길이다. 동삼동의 4미터 단면이 말해주는 것은, 한반도 문명의 시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훨씬 바다와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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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FAQ)

Q1. 패총(貝塚)이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신석기 사람들이 굴·조개·전복 등을 까먹고 껍질을 한곳에 버려 형성된 ‘조개 무덤’입니다. 단순 쓰레기장처럼 보이지만, 칼슘 성분이 알칼리성 환경을 만들어 동물뼈·식물 씨앗·인골 등이 잘 보존됩니다. 그래서 신석기인의 식생활·도구·교역까지 알 수 있는 핵심 고고학 자료입니다.

Q2. 동삼동 패총은 언제 형성되었나요?

약 BC 6,000년부터 BC 2,000년까지, 무려 4,000년에 걸쳐 형성되었습니다. 한반도 신석기 시대의 거의 전 기간을 한 유적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신석기 유적 중 하나입니다. 5개 문화층으로 구분되며 패각층 두께가 최대 4m에 이릅니다.

Q3. 흑요석이 일본에서 왔다는 게 어떻게 증명됐나요?

흑요석은 형성 당시 화산의 미량원소 조성이 산지마다 다릅니다. X선 형광분석(XRF) 같은 화학분석으로 동삼동 흑요석의 미량원소 비율을 측정한 결과, 일본 규슈 사가현 코시다케 산지의 흑요석과 일치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분석 기술 발전으로 한일 교역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Q4. 신석기인들은 정말 통나무배로 일본까지 갔을까요?

네, 거의 확실합니다. 부산-규슈 거리는 약 200~250km로, 도중에 쓰시마(대마도)·이키섬을 징검다리로 사용하면 한 번에 50km 미만의 단거리 항해로 건널 수 있습니다. 일본 조몬 시대 유적에서도 통나무배(독목주) 흔적이 발견되며, 신석기 인류의 항해 능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발달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Q5. 동삼동 패총을 직접 볼 수 있나요?

네.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동삼동패총전시관‘에서 패총 단면 모형, 출토 유물, 신석기인의 생활 디오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무료 입장이며, 매주 월요일 휴관입니다. 인접한 한국해양대학교 캠퍼스로 가는 길에 있어 부산 시내에서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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