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열전 #1] 이순신 — 23전 23승, 세계 해전사의 기적을 만든 조선의 명장

1545년 4월 28일, 한양 건천동(현 서울 인현동)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어머니 변씨는 그를 가리켜 ‘이순(李純)’이라 부르려 했으나, 아버지 이정이 “내 아들은 임금에게 충성하는 신하가 될 사람이다”라며 ‘순신(舜臣)’이라 이름 지었다. 순임금의 신하라는 뜻. 그 이름대로 그는 — 23번의 해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세계 해전사 유일의 명장이 되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 인물,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이순신 장군의 23번 전투 모두 승리 기록
이순신의 23전 23승 — 세계 해전사상 유일한 무패의 기록

이순신은 어린 시절부터 무인의 기질을 보였다.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할 때 그는 항상 장수 역할이었다. 22세에 무과에 응시했지만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포기했을 일을, 그는 버드나무 가지로 다친 다리를 묶고 다시 시험에 임했다. 결국 32세가 되어서야 무과에 급제했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그는 평생 자신만의 속도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한다. 류성룡의 천거였다. 당시 조선 수군의 상태는 처참했다. 함선은 노후하고, 병사들은 훈련이 부족했으며, 화포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이순신은 부임 즉시 함선을 정비하고 병사를 훈련시키며, 비밀리에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다. 바로 — 거북선이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터지기 정확히 한 달 전, 그는 거북선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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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거북선의 구조와 특징
거북선 — 이순신이 만든 세계 최초의 철갑선

1592년 5월 7일, 옥포(현 거제시). 이순신의 첫 해전이 벌어졌다. 결과는 압도적 승리. 적 함선 26척 격침. 아군 손실 0척. 이날부터 시작된 그의 23전 23승의 기적은,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그가 전사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았다. 한산도대첩에서는 학익진(鶴翼陣)으로 적을 포위해 73척 중 59척을 격침했다. 부산포 해전에서는 적 본거지를 공격해 100척을 파괴했다.

그러나 이순신의 진정한 위대함은 단순한 승리에 있지 않다. 1597년 정유재란 직전, 그는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白衣從軍)이 됐다. 통제사 자리에서 쫓겨나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 일개 병사로 강등된 것이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후임 원균은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모두 잃었다. 12척만 남았다. 다시 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에게 선조는 “수군을 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의 답은 역사에 남았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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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9월 16일, 명량(鳴梁). 13척의 조선 함선과 133척의 일본 함선이 좁은 해협에서 맞붙었다. 압도적인 수적 열세. 하지만 이순신은 명량의 빠른 조류를 이용했다. 좁은 해협에 일본 함선을 유인하고, 자신은 가장 앞에서 단 한 척으로 적을 막아냈다. 부하들이 두려워하자 그는 “적과 우리는 죽음으로써 결판을 낸다”고 선언했다. 그날 일본 함선 31척이 격침되고 조선 함선은 단 1척도 잃지 않았다. 세계 해전사상 가장 극적인 승리였다.

명량해전 13척 vs 133척의 극적인 승리
명량해전 — 13척 vs 133척의 기적

1598년 11월 19일 새벽, 노량해전. 이순신은 도주하는 일본군을 추격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았다. “전쟁이 한창이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졌고, 조카 이완이 그의 갑옷을 입고 지휘를 계속했다. 그날 일본 함선 200여 척이 격침됐고,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났다. 그의 나이 53세. 23전 23승, 단 한 번의 패배도 없는 완벽한 기록을 남기고 그는 떠났다.

이순신을 평가한 외국 장군들의 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일본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는 1905년 러일전쟁 승리 후 “넬슨에 비교될 수는 있지만, 이순신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나는 한 군신의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다”고 고백했다. 영국의 해군사학자 G. A. 발라드는 “이순신은 영국의 넬슨과 어깨를 겨룰 만한 동방의 위대한 명장이다”라고 평했다. 한 나라의 영웅이 아니라, 인류 해전사 전체의 기적 — 그것이 이순신이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이순신은 정말 23전 23승이었나요?

네, 1592년 5월 7일 옥포해전부터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까지 6년 6개월간 치른 23번의 해전에서 모두 승리했습니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습니다.

Q2. 거북선은 이순신이 발명했나요?

거북선의 기본 개념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지만, 임진왜란 직전 이순신과 휘하 군관 나대용이 함께 실전용으로 완성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한 달 전에 진수됐습니다.

Q3. 명량해전의 13:133은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1597년 9월 16일 명량(현 진도 울돌목)에서 조선 함선 13척이 일본 함선 133척과 싸워 31척을 격침하고 조선은 단 1척도 잃지 않았습니다.

Q4. 이순신은 어떻게 전사했나요?

1598년 11월 19일 새벽 노량해전에서 도주하는 일본군을 추격하던 중 적의 조총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Q5.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는 언제 한 말인가요?

1597년 명량해전 직전, 선조가 “수군을 폐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이순신이 장계로 답한 말입니다. 정확한 원문은 “今臣戰船尙有十二(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나이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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