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는 지중해 최대의 섬입니다. 면적 25,711㎢로 한국의 4분의 1쯤 되고, 인구는 약 500만 명. 그러나 그 크기에 비해 시칠리아가 품은 역사의 두께는 어떤 유럽 지역보다도 깊습니다. 페니키아 → 그리스 → 카르타고 → 로마 → 비잔틴 → 아랍 → 노르만 → 호엔슈타우펜 → 앙주 → 아라곤 → 부르봉 → 이탈리아 — 무려 11개의 지배 세력이 약 2,800년 동안 차례로 거쳐 갔습니다.
그 모든 지배자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고, 시칠리아는 어느 하나의 문화로 완전히 동화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흡수했습니다. 그래서 팔레르모의 노르만 궁전 안에는 비잔틴 모자이크와 아랍 천장 장식이 한 방에 공존하고, 아그리젠토에는 그리스 본토보다 잘 보존된 도리아 양식 신전이 서 있습니다. 시칠리아는 그 자체로 “지중해의 박물관”입니다.

1. 그리스의 시칠리아 — BC 8세기의 식민 도시
BC 734년 코린토스에서 온 그리스인들이 시라쿠사(Siracusa)를 세웠고, 곧이어 카타니아·메시나·셀리눈테·아그리젠토 등 여러 도시국가가 시칠리아 동·남부 해안에 들어섰습니다. 이를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 대 그리스)”라 부르며, 시칠리아는 그 핵심이었습니다.
아그리젠토의 신전의 계곡(Valle dei Templi)은 BC 6~5세기 그리스 식민 도시 아크라가스의 신전 유적입니다. 콘코르디아 신전(BC 430), 헤라 신전, 헤라클레스 신전, 제우스 신전(미완성, 길이 113m로 그리스에서 가장 큰 도리아식 신전이 될 뻔), 디오스쿠로이 신전 등 8개가 남아 있으며, 그리스 본토의 어느 신전 유적보다도 보존이 양호합니다. 콘코르디아 신전은 AD 597년 기독교 성당으로 전용되었기 때문에 거의 무손상으로 남았습니다.
시라쿠사는 BC 5~3세기 지중해에서 아테네·코린토스에 필적하는 강대 도시국가였습니다. BC 415~413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아테네가 시라쿠사를 공격했다가 대패해 약 7,000명의 아테네 시민이 시라쿠사의 채석장에 노예로 끌려간 사건이 유명합니다. 이 채석장(Latomia del Paradiso)에 카라바조가 1608년 “디오니시오스의 귀(Orecchio di Dionisio)”라는 이름을 붙인 거대한 동굴이 있습니다.
시라쿠사는 또한 아르키메데스(BC 287~212)의 고향입니다. 그는 BC 212년 로마군이 시라쿠사를 공격할 때 화경(火鏡)으로 로마 함선을 불태웠다는 전설을 남겼고, 결국 도시 함락 후 모래 위에 도형을 그리며 “내 원을 어지럽히지 말라”고 말한 직후 로마 병사에게 살해됩니다.
2. 노르만 시대 — 12세기의 황금기
AD 827년 아랍(아글라브 왕조)이 시칠리아를 침공했고, 902년 비잔틴 마지막 거점 타오르미나가 함락되면서 약 250년간 시칠리아는 이슬람 토후국이 됩니다. 팔레르모는 그 수도로 카이로·바그다드와 어깨를 나란히 한 이슬람 학문의 중심이었고, 모스크가 300개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랍인들은 시칠리아에 오렌지·레몬·아몬드·쌀·사탕수수를 들여왔고, 카놀리·그라니타 등 오늘날 시칠리아 음식의 뿌리가 이 시기에 잡혔습니다.
1071년 노르망디 출신의 노르만 모험가 로베르 기스카르와 그의 동생 로제 1세가 팔레르모를 점령하고 시칠리아 백작국을 세웁니다. 1130년 로제 2세(Ruggero II)가 교황의 승인을 받아 시칠리아 왕국(Regno di Sicilia)을 선포합니다. 이 노르만 왕조의 약 150년이 시칠리아 역사의 첫 번째 황금기입니다.
노르만 왕들은 그리스도교도이면서도 정복지 시칠리아의 그리스·아랍·라틴·유대인을 모두 보호했고, 궁정에서는 네 개 언어가 쓰였습니다. 노르만 궁전(Palazzo dei Normanni)의 팔라티나 예배당(Cappella Palatina, 1140년대)은 이 다문화 정신의 정수입니다 — 천장은 아랍 무카르나(종유석 장식), 벽은 비잔틴 황금 모자이크, 형식은 라틴 바실리카. 한 건물에 세 문화가 완벽하게 공존합니다.
1194년 노르만 왕조가 끊기고,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2세(Federico II, 1194~1250)가 시칠리아 왕이 됩니다. 그는 “세계의 경이(Stupor Mundi)”라 불릴 만큼 학식이 깊었고, 아랍어·라틴어·그리스어·이탈리아어를 자유로이 구사했으며, 팔레르모 궁정에서 시작된 시칠리아 시 학파는 이탈리아어 문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3. 팔레르모 — 노르만·아랍·바로크의 도시
팔레르모는 인구 약 67만 명의 시칠리아 주도(州都)입니다. 페니키아인이 BC 8세기에 처음 세웠고(“좋은 항구”라는 뜻 Panormos), 카르타고·로마·비잔틴·아랍·노르만·아라곤·부르봉을 거치며 끊임없이 변화한 다층적 도시입니다.
필수 코스는 노르만 궁전 + 팔라티나 예배당, 팔레르모 대성당(12세기 노르만 + 15세기 카탈로니아 고딕 + 18세기 신고전 첨가의 종합 양식, 외관이 매우 독특), 콰트로 칸티(4거리, 17세기 바로크 광장), 프레토리아 분수(누드 조각 400개로 옛날 “수치의 분수”라 불림), 발라로·부치리아 시장(아랍식 노천시장의 흔적).
팔레르모 외곽 7km의 몬레알레 대성당(Cattedrale di Monreale)은 1184년 굴리엘모 2세가 지은 노르만 황금기의 정점입니다. 내부 6,500㎡의 비잔틴 황금 모자이크에는 성서 130장면이 펼쳐지며, 동방·서방 양식이 융합된 노르만 모자이크 예술의 최고봉입니다. 팔라티나 예배당과 함께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4. 마피아 — 코사 노스트라의 100년
“마피아(Mafia)”라는 단어가 처음 문서에 등장한 것은 1865년입니다. 1860년 가리발디의 천인대(I Mille, 붉은 셔츠단)가 시칠리아에 상륙해 부르봉 왕가를 몰아내고 통일 이탈리아가 출범했지만, 약속된 토지 개혁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대지주들이 가진 라티폰디오(대농장)는 그대로였고, 농민들 사이에 “보호자”를 자처하는 비밀 조직이 자라났습니다. 이것이 시칠리아 마피아 —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 “우리의 일”)입니다.
1920년대 무솔리니가 체사레 모리 검사를 파견해 강력한 박멸 작전을 펼쳤고 약 1만 명을 체포했지만, 1945년 미군의 시칠리아 상륙(허스키 작전) 때 미국 마피아(주로 시칠리아 출신 이주민)의 협력을 받았다는 설이 있고, 그 뒤 마피아는 다시 부활합니다.
1970~80년대에 코를레오네(Corleone)라는 작은 산골 마을에서 토토 리이나(Salvatore “Totò” Riina, 1930~2017)와 베르나르도 프로벤차노(Bernardo Provenzano)가 이끄는 일파가 코사 노스트라의 패권을 잡았습니다. 1981~83년 마피아 내전(약 1,000명 사망)에서 코를레오네 일파가 다른 가문들을 제거했고, 1980년대 헤로인 무역으로 마피아의 재산이 폭발적으로 커집니다.
1992년 5월 23일 팔레르모 외곽 고속도로에서 조반니 팔코네 판사가, 같은 해 7월 19일 팔레르모 시내에서 파올로 보르셀리노 판사가 차량 폭탄으로 암살됩니다. 두 사건은 시칠리아인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반(反)마피아 시민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1993년 토토 리이나가 23년의 도피 끝에 체포되었고, 마피아는 점차 약화됩니다.
2023년 1월 시칠리아 마피아의 마지막 보스로 알려진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Matteo Messina Denaro)가 30년의 도피 끝에 팔레르모의 한 병원에서 체포되어 같은 해 9월 사망했습니다. 사실상 전통 코사 노스트라 시대의 종말로 평가됩니다.
5. 영화 「대부」와 「레오파드」 — 시칠리아의 두 얼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The Godfather)」 3부작(1972·1974·1990)은 시칠리아 코를레오네 출신 비토 코를레오네 집안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 코를레오네는 실제 코를레오네 마을과 사보카(Savoca, 타오르미나 근교)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사보카의 바 비텔리(Bar Vitelli)는 영화 1편에서 마이클이 아폴로니아의 아버지에게 청혼하는 장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Il Gattopardo)」(1963)는 토마시 디 람페두사 공자(1896~1957)의 동명 소설(1958) 원작입니다. 1860년 가리발디가 시칠리아에 상륙했을 때 늙은 살리나 공자(Don Fabrizio, 버트 랭커스터 역)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 후반 50분에 달하는 무도회 장면은 영화사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이며, 알랭 들롱(조카 탄크레디)과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앙겔리카)가 함께 춤추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
「말레나(Malèna)」(2000, 주세페 토르나토레) — 모니카 벨루치가 2차대전 시칠리아 시골 마을의 미모의 미망인 말레나를 연기합니다. 13세 소년의 시점에서 마을 사람들의 질투와 폭력을 그린 작품으로, 시칠리아 시아쿠사 노토(Noto)와 카타니아 일대에서 촬영되었습니다.
토르나토레 감독의 다른 영화 「시네마 천국(Nuovo Cinema Paradiso)」(1988)도 시칠리아 시골 마을이 무대입니다. 팔라초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에서 촬영되었고, 영화의 광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6. 에트나 산과 타오르미나
에트나 산(Etna, 3,357m)은 유럽 최대 활화산이자 세계에서 가장 활동적인 화산 중 하나입니다. 거의 매년 분화하며, 2021년 2~3월에는 단 17일 동안 산 정상부 높이가 31m 더 자랐습니다. 산기슭에는 100만 명이 살고 있고, 화산 토양 덕분에 시칠리아의 와인·올리브·아몬드 재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정상부 등반은 4가지 코스가 있고,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카타니아 쪽 리푸지오 사피엔자(Rifugio Sapienza, 해발 1,910m)에서 케이블카(€30)로 2,500m, 다시 사륜구동 셔틀버스로 2,920m까지, 최종 가이드 동반 도보로 분화구 가장자리까지. 도보로 자유 등반은 약 3,000m까지만 허용됩니다.
타오르미나(Taormina)는 해발 200m의 절벽 마을로, 에트나 산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위치입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그리스 극장(Teatro Greco, BC 3세기 건설, 로마 시대 개조). 무대 너머로 에트나 산과 이오니아 해가 동시에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입니다.
타오르미나는 19세기 영국·독일 귀족들이 발견한 휴양지로, 괴테(1787년 방문)·D. H. 로런스(여기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 일부 집필)·트루먼 카포티(여기서 「Other Voices, Other Rooms」 집필) 등이 머물렀습니다. 「화이트 로터스(The White Lotus)」 시즌 2(2022, HBO)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7. 시칠리아 음식 — 지중해의 교차로
시칠리아 요리는 지중해에서 가장 다층적입니다. 그리스 시대의 올리브·꿀, 로마 시대의 빵, 아랍 시대의 쌀·시트러스·견과·사프란, 노르만 시대의 대구·청어, 스페인 시대의 토마토·초콜릿·가지가 모두 흔적을 남겼습니다.
카놀리(Cannolo) — 튀긴 페이스트리 튜브 안에 리코타 치즈 크림 + 초콜릿·피스타치오. 「대부」 1편의 명대사 “라스푸 라 피스톨라, 프렌디 일 카놀리(총은 두고, 카놀리는 가져가라)”의 그 디저트입니다. 팔레르모와 카타니아의 카놀리는 형태가 다릅니다.
아란치니(Arancini) — 주먹 크기 쌀 공에 라구(고기 소스)·치즈를 넣고 튀긴 음식. 카타니아에서는 원뿔 모양(에트나 산 형상), 팔레르모에서는 둥근 공 모양. 9세기 아랍에서 들여온 쌀의 변용입니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 — 마카로니 + 토마토 + 가지 튀김 + 리코타 살라타. 카타니아 출신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1831)에서 이름이 왔다고 합니다.
그라니타(Granita) — 아랍에서 온 셔벗. 레몬·아몬드·커피·피스타치오 맛이 대표적이며, 시칠리아인들은 아침 식사로 그라니타 + 브리오슈를 먹습니다.
8. 여행 정보 — 카타니아·팔레르모 일주 코스

가는 길: 한국 직항 없음. 로마·밀라노 경유 카타니아 공항(CTA) 또는 팔레르모 공항(PMO)으로 1시간 30분. 두 공항 사이는 차로 2시간 30분, 기차로 3시간. 본토에서 메시나로 페리(살레르노·나폴리에서 페리, 또는 자동차 페리)도 가능. 본토 빌라 산 조반니에서 메시나까지 페리 30분.
교통: 시칠리아는 렌터카가 거의 필수입니다. 도시 간 기차는 노선·시간이 제한적이고 버스는 더 느립니다. 면적이 한국 4분의 1이라 일주에 최소 5일은 필요합니다. 카타니아 → 시라쿠사 → 노토 → 라구사 → 아그리젠토 → 팔레르모 → 체팔루 → 타오르미나가 표준 일주 코스. 차로 약 800km, 5~7일.
입장료: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 €13.5, 팔레르모 노르만 궁전 €19(팔라티나 포함), 몬레알레 €8, 시라쿠사 고고학 공원 €10, 타오르미나 그리스 극장 €10, 에트나 케이블카 €30. 통합권 sicilypass(7일 €99)는 본 비용보다 저렴.
추천 시기: 4~6월(꽃·신록·기온 22도)과 9~10월(아직 따뜻한 바다). 7~8월은 38도+ 강한 햇볕이 한국의 한여름과 비교가 안 됩니다. 11~3월은 비가 잦지만 한산하고 가격이 싸며, 일부 산악 도로는 폐쇄될 수 있습니다.
숙소: 팔레르모·카타니아 4성급 €120~250. 시라쿠사 오르티지아 섬은 분위기 좋고 €150~300. 타오르미나는 휴양지 가격으로 €200~600. 시골 농장(아그리투리스모)에서 머무는 것도 추천 — €80~150에 자체 와이너리 와인 시음 포함이 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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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FAQ)
Q1. 시칠리아에 며칠이 적당한가요?
최소 5일, 권장 7~10일입니다. 동부(카타니아·시라쿠사·타오르미나·에트나) 3일, 남부(아그리젠토·노토·라구사) 2일, 서부(팔레르모·몬레알레·체팔루) 2일이 기본. 3일 짧은 일정이라면 동부 또는 서부 한쪽만 선택하길 권합니다.
Q2. 시칠리아는 위험한가요? 마피아는 지금도 활동 중인가요?
관광객 입장에서 시칠리아는 다른 이탈리아 지역만큼 안전합니다. 마피아는 1990년대 이후 약화되었고 일반인 대상 폭력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팔레르모·카타니아의 일부 지역은 야간 소매치기·바가지에 주의. 일반적인 유럽 도시 안전 수준입니다.
Q3. 「대부」 영화의 코를레오네에 가볼 수 있나요?
네, 팔레르모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의 코를레오네(Corleone)에 갈 수 있고, 시내에 “반(反)마피아 박물관(CIDMA)”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코를레오네 마을 장면은 사실 사보카(Savoca, 타오르미나 근교)에서 찍었습니다. 사보카의 바 비텔리는 영화 1편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Q4. 에트나 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나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화산 활동이 잠잠할 때는 가이드 동반으로 분화구 가장자리(약 3,300m)까지 가능. 활동기에는 2,920m에서 통제됩니다. 등반 시 자체 동굴·바람·기온 변화가 심하니 등산화·바람막이·물 필수. 가이드 비용 €25~45.
Q5. 시칠리아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은?
카놀리·아란치니·파스타 알라 노르마·그라니타·말린 토마토·피스타치오 페스토. 음료로는 마르살라 와인(달콤한 강화 와인), 네로 다볼라(시칠리아 적포도주). 후식으로 카사타(시칠리아식 케이크). 팔레르모 길거리 음식 투어(€40)는 핵심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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